여전히 태양은 이글거리고, 인공의 세찬 바람 아래 머문 사람들은 꽃을 담을 마음 자락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꽃들이 맘껏 피어나질 않는다. 사랑하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자라는 꽃이다.
세상의 꽃들이 시무룩할 때,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아랑곳없이 빨갛게 타오르는 꽃이 있다. 우리 성당 성모님 곁에 선 자미화(紫薇花), 배롱나무꽃이다. 이른 아침부터 성모님께 곡진한 기도를 바치던 베로니카 할머니의 굽은 등을 다독이고, 따박따박 걸음마 하는 수아의 말간 눈동자도 흐뭇이 들여다보다, 미사가 끝난 뒤 신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고요한 뜰에서 성모님과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는 목백일홍이다.
어느 지방에서는 잎이 늦게 나고 제일 먼저 떨어진다고 해서 ‘게으름뱅이나무’, 피고 지기를 세 번 하고 세 번째 필쯤 햅쌀이 난다고 해서 ‘쌀밥나무’,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보여 ‘부끄럼나무’라는 별별 이름이 있으나 우리 성당의 배롱나무는 ‘두레기도나무’이다. 한 송이가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뿔형을 이루는 작은 꽃들이 백일 간 서로서로 도와 총총 피어나는 두레꽃나무, 목백일홍은 성모님의 기도 동무다. 성모님이 두 손 모으고 기도할 때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고, 더위가 눅어진 어스름에 묵주알을 굴리며 들어서는 수험생의 엄마에게 반가이 고개를 돌리며, 어둔 밤 나직이 새어나오는 ‘수능 수험생을 위한 백일기도’에 꽃머리를 들어 갈채를 보탠다.
어스름에 시작한 수험생 엄마들의 기도는 이슥한 밤이 되어도 지치지 않는다. 아들, 딸의 엄마는 이름도 어머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 성모님도 세상 엄마들의 기도를 응원하며 어둔 밤을 하얗게 빛내었다.
이윽고 하얀 달빛만 내려앉는 성당의 빈 뜰이 되고, 배롱나무꽃도 어슴푸레 잠든 밤. 그러나 우리 어머니 성모님의 기도는 잠들지 않고 깨어있었다.
“내 이름은 너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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