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에 가면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 있다. 「성 바오로 성당」이 그것이다. 성 바오로 성당이 유명한 것은 그 성당이 정면에 「외벽」만을 달랑 남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성 바오로 성당은 지은지 4백년이 넘는 아주 오래된 고옥(古屋)이다.
이 유명한 성당이 외벽 하나만을 지니고 서있는 오늘의 모습속에는 오랜 세월동안 겪어온 온갖 풍상이 담겨져 있다.
성 바오로 성당이 겪은 풍상을 열거하자면 첫째 해풍(海風)을 들 수있다. 알다시피 작디 작은 면적의 마카오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 건물에 해로운 해풍을 피할수가 없었을 것이고 수백년간 그 해풍이 건물을 곰삭게 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풍상은 화재다. 아무리 바닷바람이 건물에 해로울 지라도 외벽만 남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몇번에 걸쳐 일어난 화재가 풀어주고 있다.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던 마카오의 지리적 위치가 세번째 풍상이었다. 열강들의 다툼속에서 이나라 저나라 발뿌리에 채일수 밖에 없었던 마카오의 신세가 곧 성 바오로 성당의 신세가 될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4백년 역사의 성 바오로 성당이 앞면 외벽만을 남긴채 외롭게 서있는 모습을 보는일은 일견 흥미롭게까지 하다. 그 안에 담겨져 있을 온갖 역사의 이야기들을 보는듯한 착각에 관광객들은 감회에 젖기도 한다.
바람에 패인 기둥, 검게 그을은 화재의 흔적 그리고 총탄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성 바오로 성당을 보면서 사람들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함께 배우기도 한다.
말없이 서 있는 외벽이지만 오랜 역사를 버텨온 그 끈질김을 보는 일은 즐겁기조차 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을 보는것은 경악이었고 분노였다. 아니 저 건물이 4백년이 되었는가, 백년이 되었는가, 십년이 되었는가, 아니, 해풍이 불었는가, 화재가 났는가, 전쟁이 있었는가. 지은지 불과 6년 되었다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릴때 우리 국민들의 억장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어떤 말을 동원해도, 어떤 단어를 사용한다 해도, 삼풍백화점의 비극적 사건을 대변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비판과 질타를 쏟아 놓았다. 부실공사 자체도 원망했고 관리허술도 질책했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위험을 눈앞에 뻔히 보면서 인간의 생명보다는 돈벌이를 염려했던 사람들의 비인간적 만행을 규탄했다.
이같은 반응과 결과는 그동안 줄지어 터진 대형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반드시 해온 일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번 사건앞에서 이번에야 말로 우리 국민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인명을 휴지조각보다 못하게 여긴 사건 책임자들에 대한 당국의 조치를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 일이다.
온갖 매스콤이 난리법석을 치는 속에서 국민들은 잠깐 분노하고 정부가 엄중대책을 발표하면 그것으로 모든것이 끝나버렸던 과거의 대형 사건들을 기억속에 떠올려야만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다시는 대형사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약속이 지켜지는 가를 감시하지 못한 우리국민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은 망각이다. 아직 1년도 못지난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겨우 3개월이 채 못된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사건에 대한 우리 모두의 무심함과 망각이 삼풍사건을 불러 일으켰음을 엄중히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놓고 당국의 대처방안에도 경악을 금치못했다.
엄청난 인재가 줄을 잇고 있는 나라에서 그렇듯 우왕좌왕하는 꼴은 차마 보지 못할 노릇이었다.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리의 재난대책은 인재다발 지역에 원시적수습대책을 보는것 같아 정말 분통을 터트리지 않을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매몰자들을 후송하기위해 꼭 필요한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고있는 구조 대원들의 모습은 마치 구경꾼들의 그것같은 착각마저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것은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많은 구조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을 삭감시키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 매스콤의 무지를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생생한 현장을 안방에까지 전달해 주고자 하는 매스콤의 헌신적 노력은 높이 사줄만한 일이었지만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는것이 보다 시급한 이번 구조작업에 매스콤은 현장의 무질서를 가중시키면서 오히려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것 자체가 특종인데 무슨 특종을 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드는것인지, 매스콤은 이번 사건에서 생명구조 그 자체보다 보도경쟁에 보다 관심을 두는듯한 모습을 우리 국민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우리가 해야할 일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을 지키기위해 노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평소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왔다면 감히 인간 생명을 무시한 아파트와 목숨을 담보로한 백화점이 이 땅위에 지어질수는 없기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1불어치 보다 못하게 떨어져버린 우리 자신의 생명의 값을 제대로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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