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처음에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도 아직 나이가 어렸던 그 시절엔 모두 새벽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잠자리도, 까치도, 참나무도, 육식공룡도, 오리너구리도, 사자며 양들도, 아이 밴 여인도, 수줍어하는 청년도, 노인들까지도 금성, 샛별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기다렸다. 모두는 과연 그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며 또 기다린다. 저으기 인내심을 갖고 그들은 그렇게 언제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동이 트기 시작했다. 모두 갈채를 터트리며 서로 서로 팔짱(날개, 이파리, 무엇이든간에)을 끼고서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고 익살맞은 소리로 드높이 노래 불렀다. 정말 다시 그 일이 일어나다니! 태양이 이렇게 또다시 떠오르다니. 그것도 한치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아침이 밝아 온 것이었다.
이젠 그 사건도 그들에겐 일상이 되었으므로, 해를 담당할 마을 철학자들 뽑기에 이르렀고 그 사람은 홀로 명상에 잠겨 매일 열리는 원시신학 회합인 정오 토론을 준비했다. 가장 좋아했던 한 가지, 유일한 묵상의 주제는 왜 존재는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또렷이 현존하는 것일까? 게다가 그 놀라운 사건-태양이 떠오른다는 사건-을 아침밥 후의 정기모임에서 더이상 이야기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새벽을 기다리기 위해 모이는 것 조차도 모두 집어치웠다. 이제 다른 일거리들이 생긴것이다.
일하고 추수하고 요리도 하며, 불평하기도, 아스피린도 발명해야 하고, 위궤양으로, 심장병으로, 암으로, 교통사고로 고통을 겪기도 해야했다. 하느님은 변함없이 놀라운 기적만을 끊임없이 베풀어주시고 계셨지만 아무도 알아보질 못했다. 이제 그들은 눈을 뜨면 살아가야할 생각만 했지 그 순간에 경탄으로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살아 있는지, 건강한지 기색을 살펴보긴 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이 말하고 있는 신비를 새겨두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이별의 키스를 나누기도 하지만 모두 경외라곤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게 되었다. 탄생하고, 숨쉬며, 웃고, 울며, 노래하고, 일하고 죽고 모두 그렇게 쉬임없이 뉘엇뉘엇 생명을 죽이고 있었다. 하느님도 한 처음과 같은 아침을 주시며 쉬임없이 기적만을 베풀고 계셨지만 아무도 창조의 경이를 새로이 느끼고자 모여들지는 않았다. 한가지, 어째서 존재는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 마저도 망각해버리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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