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살소동에 집을 비우고 나가시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신다며 어머님께서는 시내에서 1백원짜리 과자를 한박스 사서 침대발치에 전을 차려주셨다. 끊임없이 누구라도 드나들게 해 놓으시려는 어머님의 배려로 나는 그렇게 과자장사를 시작하였고 우표값이라도 내손으로 벌 수 있다는 것에 작은 보람 같은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와의 편지왕래가 일주일에 두어번씩 빈번해지며 그녀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그녀가 믿고 있다는 가톨릭 신앙을 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이라면 지난번 대구에서 학을 띠고 온 터라 난 완강히 거부하였지만 그녀는 성당에 다니기가 정 내키지 않는다면 통신교리를 통하여 공부나 조금씩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심심하기도 하고 하루해가 길기만 하던때라 승락하였더니 곧바로 신청하여 통신교리 교재가 그녀의 편지와 함께 배달되었다.
열심히 읽고 답안지 작성하며 보내면서 난 꼭 만점을 받으려고 애를 쓰기 시작하였다. 수료증을 받으면 한번 놀러오겠다는 그녀를 기다리며 난 이미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그녀를 의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34살이나 된 나와 이제 겨우 22살 밖에 안된 그녀를 생각할 때 우리들의 관계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녀관계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숨긴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집에 처음으로 전화가 개통되던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추적추적 쏟아지는 비 때문이었는지 난 괜히 마음이 이상해져서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해서 『사랑한다. 나의 색시가 되어 줄 수 있느냐』고 고백하였더니 뜻밖에도 그녀는 『나도 그래요. 교리공부는 끝내셨어요? 곧 내려 갈께요』라고 말했다. 얼떨결에 전화를 끊어 놓고도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괜히 농담하는 줄 믿고 농담으로 받아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3개월간의 통신교리를 마치고 수료증을 받은지 며칠 후 그녀는 정말 내게로 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녀는 그렇게 내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다소 어처구니 없고 황당하기는 하였지만 솔직한 내 마음은 그렇게라도 내게 와 버린 그녀를 다시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통신교리를 통하여 조금씩 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 천주님의 능력을 그녀를 통하여 확실하게 깨닫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린토 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의 위대함은 산을 옮길만한 능력도 있고 시기하지 아니하고 자랑도 교만도 무례하지도 않고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20세에 나의 두다리를 거두어 가시며 19세의 꽃다운 그녀에게서 몸의 반쪽을 거두어 가시며 우리 두사람의 만남을 예비하셨는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날밤 우리들은 우리의 만남을 결코 헛되게 하지 말자고 굳게 굳게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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