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신부님께서도 무척 난감하신 모양이었다. 내가 세례받은 신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교리를 받으러 다닐 수도 없는 처지고 보니 선듯 혼인성사를 허락하실 수가 없기도 하였지만 더욱 망설여지는 까닭은 나와 그녀의 나이가 12살이나 차이가 나는 것도 그렇고 나의 장애 정도로 보나 그녀가 이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영원히 성가정을 이루며 잘 살아낼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니 선듯 혼인성사를 허락하실 수가 없으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우리 두 사람의 결합이란 세속적으로의 모든 조건이 결코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거의 매주일 신부님을 찾아가서 간청에 간청을 거듭하였다. 물론 우리들은 그 기간중에 새로이 9일기도를 시작하여 신부님께 간청하는것 못지않게 성모님께도 우리 두사람을 구원할 길을 열어 주십사고 간절히 간절히 청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조르고 조르고 또 조르면 성모님께서도 감동하셔서 할 수 없이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것이 묵주기도 라고 알고 있는데 성모님도 신부님도 우리들의 간청에 드디어 두손 두발 다 들으셨다면서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짐하셨다. 『두사람 모두 꼭 행복하게 잘 살아내어 나의 일생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 없게 됩니다』
우리들은 목소리를 합하여 큰소리를 대답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어렵사리 첫번째 관문은 통과하여 1986년 3월 29일 부활절 전날 저녁 7시 30분으로 나의 영세식과 함께 혼인성사를 받을 날짜와 시간은 정해졌지만 과연 그녀의 부모님 등이 와 주실까가 또 걱정이었다. 그녀가 내려온 후 간간이 우리들의 형편을 알리며 잘 지낸다는 편지를 드리기는 하였지만 과연 나같은 사람을 사위라고 인정해 주실까는 오직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만이 아실일이고 하느님만이 그분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실 일이었기에 우리들은 오직 하느님께 매일 매일 간구하고 두손모아 기도 드리는 수 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우리는 엽서를 한 묶음 사서 우리 두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해 달라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혼인성사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우리손으로 직접 써서 청첩장을 대신하여 일가 친척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혼인성사 준비를 하였고 친구내외의 한복과 양복을 빌려 놓으니 우리가 할 일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나의 형제 친척들과 본당 신자들을 모시고 신부님앞에 선 우리 두사람은 꼭 잘 살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였고 그녀와 나의 손가락에 끼워진 하얀 은가락지 혼인반지는 그 어떤 다이아몬드보다도 찬란한 빛을 발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였다. 하얀미사보 사이로 잠시동안 눈물이 반짝이는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며 거의 1년만에 처음으로 성체를 영하는 모습은 거룩하다 못해 감격스럽기까지 하였는데 영성체를 마치고 돌아서니 뒷좌석에 장인 장모님을 비롯하여 처이모ㆍ이모부ㆍ큰처남 내외에 고모ㆍ고모부 등이 모두 참석하고 계셔서 우리들의 결혼식을 더욱 빛내주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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