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주년을 지냈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구 조선총독부의 철탑이 잘라진다 하여 친일부역세력이 청산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직도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있고 신신민주의가 계속되고 있다. 수출주도형 공업화과정에서 불안정한 미국의 자본과 시장에 대한 의존성은, 특히 미국과 일본에 대한 남한의 의존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식민주의의 종식은커녕 문화적 제국주의가 우리의 영혼까지 침투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남한의 공업화로 인한 생태계의 위기와 농업의 완전 파괴이다. 이제는 북한도 변해야 하지만 우리 남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먼저 자유ㆍ정의ㆍ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베트남 민중들에게 지난 전쟁때에 저지른 우리의 잘못도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통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5ㆍ18문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함께 하자. 이문제를 은폐하고 어떻게 통일된 조국을 만들 수 있을까? 누구를 처단하자는 말이 아니다. 화해하자는 말이고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자는 말이다. 우리 교회는 일제때 친일행각은 없었는가? 있었다면 그 신학적 배경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의 기초신학을 성(聖)과 속(俗)의 이원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명동성당의 공권력 투입때 보여준 우리 교회의 반응과는 달리 박홍 신부님의 주사파 발언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발언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반공신학은 통일신학을 지양하면서 아세아 신학을 위한 우리의 모색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말이 사면이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개혁이니 사정이니 하면서 잡아넣을 때는 언제고 풀어줄 때는 5ㆍ6공 비리 관련자도 마구 내준다. 이것은 정치적 협잡이지 도덕적 결단은 아니라고 본다. 언론들은 이 사면을 이구동성으로 잘 했다고 야단들이다. 과연 그런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사면인가? 광복50년에 부끄러운 사면이다.
4백명의 양심수들이 아직도 갇혀있다. 갇혀있는 사람을 풀어주는 것, 이것이 참된 해방이다. 황석영씨뿐만 아니라 박노해 시인도 풀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광복 50주년에 알맞은 사면이라고 본다. 박노해 시인은 박기호 신부의 동생이다. 그들이 모두 자유로울 때 이 땅이 진정한 자유국가이다. 우리 교회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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