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형이상학의 거봉 코르넬리오 파브로(Cornelio Fabro)교수가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백남익 몬시뇰로 부터 전해듣는 순간 필자는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분은 필자를 말할 수 없이 아껴 주시고 지도하여 주신 은사이기 때문이다.
■생애
파브로 교수는 1911년에 출생했으며 파도바 대학과 로마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라테라노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성 토마스대학에서는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로마의 우르바노 대학을 위시하여 여러 대학에서 강의 했다. 또한 벨지움의 루뱅대학의 까르디날 메르시에 석좌교수와 미국 노트르담 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이탈리아국의 대표로서 유네스코의 「인권선언」에 참가하였다. 그는 그의 놀라운 학문적 문화적 활동으로 이탈리아 정부의 최고 훈장인 대통령의 금상을 받았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문 위원을 위시하여 교황청 여러 위원회와 코펜하겐의 S. 키르케골 학회를 비롯하여 토마스 학회 등 여러 국제 학회의 위원을 지냈다.
■학설
파브로 교수는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세계 형이상학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철학자이다. 그는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특히 플라톤의 분유설(分有說)을 깊이 연구하여 토마스를 거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분유설과 존재론을 성립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보다 더 깊은 연찬을 쌓았다. 파브로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십분 활용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학설에 내적 발전과 초월을 일으켜 불후의 존재자체론을 정립시킨 토마스의 형이상학을 역사의 흐름속에서 체계적으로 더 발전 시켰다. 파브로 교수는 데까르뜨의 「생각하는 자아」를 시발로 형성된 경험 현상론, 의식 현상론, 관념론, 실존철학 더 나아가서는 무신론, 유물사관, 물리적 힘에 의한 공산통체제, 인간성 억압과 파괴등을 극복하려 무진 애를 쓴 철학자이다. 특히 이탈리아 공산주의를 이론적으로 궤멸시킨 헤겔과 맑스 변증법의 전문가였다.
그는 구원(久遠)의 진리에 근거하여 역사속에 흐르는 인류사상 특히 근, 현대에 나타난 서구 사상을 아무도 따라갈수 없는 혜안으로 투시 그 잘못된 궤도를 대담 솔직하게 지적, 인간지성이 가야할 본연의 모습을 명쾌히 제시하였다. 그의 존재론을 충분히 이해할 사람은 오늘에도 그리 많지 않다. 사실 현금 서구철학계에서 큰 형이상학자로 꼽히는 E. 코레트 교수는 파브로 교수의 존재론적 깊이를 자기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다고 극찬하는 것을 보았다.
파브로 교수는 근, 현대 서구철학 사상이 크게 병들어 계속 큰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는 것을 서신을 보낼 때 마다 개탄하였다. 그 근본을 그는 데까르뜨의 자아(ego)에서 보았다. 데까르뜨의 자아는 결국 인간 정신과 철학을 자아안에 밀폐시켰고 더 넓게는 「관념」(idea)안에 밀폐시켰으며 또 다른 편으로는 경험계와 감각계에 밀폐시켜 결국은 인간을 이 세계안에 더 구체적으로는 물질계에 밀폐시켰다는 것이며 끝내는 우리시대가 경험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세계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파브로교수는 내재원리(內在原理)라는 새 용어로 표현했다. 이런 흐름속에서 그 한계를 느낀 서구철학이 다시 초월을 말하며 새로운 존재론을 시도 하였으나 그것은 의식현상을 벗어나지 못한 주관적인 것이었고 객관성을 결여한 사이비 초월이며 사이비 존재론이라는 것을 깊은 통찰로 제시하였다. 이 점을 가장 신랄하게 파헤친 것이 M.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애매성과 허구성을 초기부터 폭로 하였으며 계속 추궁하여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매몰시킨 장본인이다. 또한 파브로교수는 하이데거의 심대한 영향하에 그 학설을 성립시켰다고 본 K. 라너의 학설에도 비판을 가했다. 그는 「칼 라너와 토미즘의 해석학-형이상학의 인간학에로의 해소」라는 저서에서 라너가 딛고 선 토마스의 인식-존재론의 근본적 왜곡을 낱낱이 논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교, 신학사상적 면에서 라너의 시대적 공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파브로 교수는 이 책 말미에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그뿐만 아니라 파브로 교수는 P. 틸리히 K. 바르트 R. 불트만 등의 형이상학적 신의 파괴는 절대신앙으로서 신을 만나게 한다는 주장에도 강력히 반대한다. 이런 사상은 인간 지성의 본질적 요인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파브로 교수의 사상의 핵심은 존재자의 존재, 현실태의 현실태, 완전성의 완전성, 모든 존재의 근원적 존재, 존재자체에 있으며 그런 존재는 신(神)이라는 것을 명시했다. 이런 존재와 여태 모든 존재의 관계를 그의 분유설로 설명하였다. 또한 의식의 현실태 즉 의식의 작용과 존재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하였다.
실존주의에도 깊은 조예를 가진 그는 수도자로서 또 바실리카(대성당)의 주임신부로서 카르케골의 기도를 극찬했으며 깊은 신비의 세계에 대한 수많은 논문도 발표하였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말대로 영성신학의 기초가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다.
■필자와의 관계
이제 필자와의 깊었던 관계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필자의 학위논문 지도교수였다. 학위논문작성이 끝났을 때 교수님은 나더러 로마에 남아 자기의 강의를 분담할것 즉 자기의 후계자로 키우겠다는 것과 숙소도 마련하겠다는 것과 라틴어로 된 그 논문중 세장을 영, 불, 독어로 번역하여 해당국의 유수철학지에 게재토록 하자는 말씀이었다. 논문 발표회에서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숨마쿰 라우 데(Summa cumlaude) 최고 평점을 받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은사 파브로 교수의 덕분으로 생각하며 다시한번 그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은사님의 서거 소식을 접한 필자는 마침 고희기념논총 8권중 제5권으로 필자의 학위논문 「죤 듀이의 윤리학설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학설의 비판적 연구-형이상학적 관점에서」를 출판중이었으므로 이 책을 고인에게 바쳐 조금이라도 그 은덕에 보답하고자 한다.
이 책을 우리말로 펴낸 동기는 미국사상과 그 생활양식의 심대한 영향으로 우리의 진위(眞僞)관과 가치관특히 윤리관과 선악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이때 참된 진리관과 선(善)관, 가치관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기실 죤 튜이는 미국사상과 생활양식에 초석을 놓았다. 듀이의 실용주의는 실리주의를 잉태하고 있었으며 실리주의는 이기주의로 더나아가서는 감각주의, 찰라적 쾌락주의로 흘러갈 운명을 자체내에 배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원천인 듀이 학설의 공과(功過)를 분명히 가려보고자 이 책을 출간한 것이다.
끝으로 옷깃을 여미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은사 C. 파브로 교수님의 영혼이 길이 평안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지면제약상 파브로 교수님의 방대한 저서와 논문들중 일부라도 소개하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