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내의 입에서는 처절한 절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여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대못이 손바닥에 박히는 아픔도 감내 하셨다잖아 조금만 참아봐」
나의 그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지 아픔은 여전하면서도 얼굴에 조금은 안심하는 빛이 떠올랐기에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내의 손에 묵주를 쥐어 주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내가 큰소리로 선창을 하자 아내 또한「천주의 성모마리아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하고 기도하였다.
아내가 울부짖었고 우리들은 아내의 아픔을 나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주십사고 그 밤이 다 새도록 묵주기도를 바치고 또 바쳤다.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어서야 겨우 택시 한대가 연결되어 병원으로 실려 갈 때는 이미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검사결과는 맹장염이였다. 다행스럽게 만성맹장이었기에 망정이지 급성맹장염에 걸렸더라면 꼼짝없이 어제 밤에 아내를 잃을 뻔 하였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다. 어찌된 일인지 아내는 혈압도 정상보다 훨씬 낮고 뇌수술을 받았던 환자이기 때문에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의사들은 수술을 꺼려했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큰 병원으로 가더라도 아내의 뇌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 소견서를 받아서 대구로 오시게 하고 우리는 아내를 구급차에 싣고 대구로 향했다.
어디든지 큰 병원의 유명한 의사 면회하기가 그렇게 수월할 수가 있으랴. 장모님께서 소견서를 가지고 대구까지 오신 것은 맹장 진단을 받은 지 꼭 나흘만의 일이었다. 아무리 만성맹장염이라지만 나흘씩이나 응급실에 방치된 아내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였다. 깜박깜박 정신을 잃기도 하였지만 잠시 정신이 들어서 통증이 멎는 시간이면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아내만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는 엉덩이가 욕창으로 너덜너덜 찢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일미사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겠노라고 주님께 수없이 다짐을 하였다.
드디어 수술실로 실려 가는 아내의 표정엔 두려움 대신 내 손을 꼭 잡으며 「걱정하지 마세요. 성모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거예요」라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3~4시간에 걸친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돌아오는 아내의 손에는 그때까지도 묵주가 꼭 들려 있었다. 아내의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너무나도 대견하여「맹장도 없는 여자랑 어떻게 살지? 순간적으로 돌발적인 힘은 맹장에서 나온다는데 이제 완전히 신세 버려놨네」하고 농담을 건넸더니「여보! 맹장이 없으니까 허전하다」하면서 활짝 웃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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