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처음 대구 월배성당에서 한살림과 안동 생공과 함께 농산물 장터를 열었다. 그리고 이 장터에 재생시장도 포함시켰고 구수한 우리 농산물로 만든 먹을거리도 곁들였다. 어쩌면 이 장터가 지금의 조합의 전신이 아니던가. 물론 환경물품, 저공해비누, 장바구니, 우리민속놀이 등 아주 재미있게 이벤트를 만들었다. 이것은 본당에서 흔히 열었던 바자회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여기에는 환경운동, 공동체운동, 여성운동, 우리농산물 운동이 있기 때문이다.
1991년 4월 10일 월배성당에서 상인성당으로 옮긴 뒤 12평 매장을 그 당시 천만원을 주고 얻었다. 본당 안보다는 본당 밖에 매장을 둔 이유는 지역 주민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안동 생명의 공동체에서 생산된 물건이 대부분이었고 가능한 한 유기 농산물로 농촌문제를 풀려고 했다. 우유팩 재생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기 때문에 매장에 우유팩이 늘 차 있었다.
실무자 어머니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봉사자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물건 배달을 위해서 트럭도 한대 샀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쌍호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가격을 함께 결정한 적도 있었다. 이 주체는 어머니인 여성들이었다. 특히 김장때는 배추와 무 직거래로 생활의 맛을 톡톡히 즐겼다.
상인성당을 건립하고 상인동에 대단위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나는 상인동 매장을 좀 더 크게 내고 1억원 정도의 비용을 출자형식으로 충당하였다. 많은 교우들(약 8백 명)이 그 뜻이 좋아서 기꺼이 동참해주었다.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 운동과 조합을 본당사목의 한 영역으로 생각했고 지금 문제되고 있는 신앙과 생활의 분리, 이 틈을 이 조합운동을 통하여 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파편화된 아파트의 생활양식을 이른바 밥ㆍ생명ㆍ먹을거리를 축으로 하는 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도 많았다. 출자한 사람들이 이용도 하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운영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식의 빈곤 때문에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태도, 상품이 다양하지 못하고, 제때에 물건이 나오지 않는 경우 등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했다.
이제 이 조합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데 초창기에 시작했던 교우들은 이 조합을 떠나고 오히려 지역시민들이 이 조합을 아낀다는 이 역설이 우리의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두 번의 실패(월배, 상인)에도 불구하고 본당을 쇄신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역선교로써 이 생활 협동조합이 어느 시대에 보다 꼭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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