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는 한국교회의 얼굴이다. 그래서 순교자를 노래하는 우리의 목청은 높기만 하다. 특히 순교자성월로 지내는 이 9월에는 그분들의 발자취가 서린 성지를 순례하는 발길들이 잦은 편이다. 성지순례는 미지근한 우리들의 신앙에 찬물을 끼얹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몇해 전, 이맘때 나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님의 발자취를 좇아 혼자서 성지순례를 떠났다. 김신부님이 태어나신 솔뫼를 시작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훗날 잠시 사목활동을 펼치셨던 용인 골배마실, 스물여섯이라는 젊디젊은 청춘으로 순교의 피를 뿌린 서울 한강변의 새남터, 그리고 묘소가 있는 미리내까지 사흘간의 여정이었다. 그 가운데 솔뫼에서 있었던 일 한 가지.
해거름녘에 합덕 솔뫼에 도착하여 그날 밤을 그곳 피정의 집에서 묵었다. 다음날 오전 느즈막이, 청청한 소나무 수백 그루가 서있는 1만여평의 성지를 구석구석 산책하는데 어디선가 코끝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아침 끼니를 거른 탓인지 냄새는 내 코를 더욱 진동했다. 몇 발자국 옮기자 한쪽 모퉁이에서 너덧 사람이 둘러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기랄, 성지 안에서까지 고기 굽고 술까지…. 옳거니, 기사거리 하나 잡았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셔터소리를 듣고는 나에게 그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보니, 사목위원들의 성지순례를 위해 사전답사차 서울에서 막 내려온 일행이었다. 로만 칼라를 한 젊은 신부님 한 분도 동행하였다.
신부님 점잖은(?)투로 「성지순례」가 아니라 「사전답사차」왔다는 얘기를 강조했다.
「그럼 그렇지…」.「김신부님, 죄송합니다. 이 사실을 「쓰지 않기로」한 약속을 깨뜨려버려서. 사실 저도 그때 고기 몇 점 거든 공범 아닙니까? 그리고 서울에 김신부님이 어디 한 두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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