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필리핀에서 온 한 여성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를 그냥 여성으로만 표현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점이 없지 않다. 현재 그녀가 가지고 있는 굵직한 직함이 그렇고 또 그녀가 거친바 있는 직함의 무게로도 그렇다. 그녀는 목하 필리핀의 책임있는 선거를 위한 본당사목위원회 총대표격인 국가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인구의 85% 이상이 신자인 필리핀에서 전국 본당 조직의 총 사령탑을 맡고있다는 사실, 그것도 선거라는 국가적 대사(大事)와 관련된 일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그녀의 무게를 실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바로 헨리에타 데빌라 여사. 그녀는 전세계를 통틀어 모두 40여명이 될까 말까한 교황청 평신도위원으로 눈부신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데빌라 여사의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아시아회장인 그녀는 교회의 가르침을 생활속에 실천하면서 매일 매일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바로 전까지 필리핀 천주교회 전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직을 맡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말이 쉽지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직을 여성이 맡는다는 사실은 우리로서는 정녕 실감이 나지않는 이야기다. 신자율이 85%를 너고 교구가 79개에 주교님만도 1백30분이 넘는, 거대교회의 평신도 회장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녀를 보는 눈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어떤 주제가 화제로 떠올라도 전혀 막힘이 없는 그녀의 해박한 지식이었다. 여성 가정문제에서부터 생명 인구문제 교회 평신도 평신도운동 그리고 각종 문헌들, 수십가지에 이르는 역대 교황들의 가르침 즉 사회교리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당당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더구나 그녀는 4남2녀의 어머니이자 손자를 3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올해 56세의 젊은 할머니이자 가정주부다. 대학 재학중인 18세에 결혼, 공식적인 교육과정을 끝낼수 밖에 없었던 데빌라 여사는 6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틈만나면 교회서적들을 읽고 새로 나오는 가르침과 문헌을 재미있게 독파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따라서 그녀의 힘은 스소 알고자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얻은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는데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수가 있다. 신심 그 자체만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부한 교회의 가르침을 가정과 교회, 사회와 더불어 나누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데빌라 여사의 이야기가 필리핀 교회의 보편적 상황은 아닐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앞서곤 있지만 여전히 남성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으며 교회안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를바 없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데빌라 여사는 필리핀교회의 보배로 세계에 그 이름을 각인하고 있는 데에는 필리핀교회에 그 공을 돌리지 않을수 없다. 필리핀교회는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마음껏 발휘하도록 데빌라여사에게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데빌라 여사의 열정과 달란트는 여성을 포함동료 평신도들의 전폭적인 인정과 더불어 교회당국의 각별한 수용이 있었기에 꽃을 피울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해 한국교회에서 열린바 있는 한국국제회의에서 발표자로 여성이 나선 사실에 대해 심히 불편해하던 한국교회 남자 평신도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교회안에서는 주제에 따라 누가 적절한 발표자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발표자는 무조건 남성인것이 당연하다는 절대적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은 그렇다치고 여성 스스로도 여성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못봐주는 이 특이한 한국적 현상은 현재 한국교회 여성들의 성장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지금 북경에서는 세계 여성대회가 열리고 있다. 가정과 자녀, 가난과 빈곤, 낙태와 생명윤리, 인권과 정의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여성의 힘을 모으고 있다. 문화와 역사, 민족과 종교는 달라도 각국 여성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상황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음을 이번 북경 여성대회는 보여주고 있다.
세계 여성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숙지하고 있는 이때 우리 교회 다수의 여성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북경 세계 여성대회를 지켜보고 있을까? 적극적 신앙의 수호자로, 열렬한 신앙의 대변인으로, 확고한 자리지키기에 없는 시간 쪼개느라 땀흘리고 있을까?
교회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모를때 단순한 노력봉사자로 남을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남성이라고 예외가 없다. 한국교회의 구성원의 60%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그 무서운 활력을 교회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단순 봉사활동으로만 사용한다는 참으로 아까운 노릇이 아닐수 없다.
한국교회는 더이상 엄청난 여성인력을 단순봉사 노력봉사자로만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신앙이 교회안에서만 맴돌지 않고 가정안에서, 사회생활을 통해 이웃과 나눠질수 있도록 그들을 새롭게 무장시키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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