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안 식구끼리도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주말에도 큰맘 먹지 않으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섭섭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 주일 오후에는 아이들의 등쌀에 못이겨 가까운 야외로 나들이를 했다. 국민학교 3학년과 2학년인 두 딸애를 물론, 이제 겨우 말문이 열리기 시작한 세살박이 막내딸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두 손을 들 수밖에. 해질녘 돌아오는 차안에서 큰애가 음악을 끄며 말을 건넸다.
『아빠, 아빠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으응, 그건 갑자기 왜?』『학교 숙젠데, 선생님이 내가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적어 오래』『그래,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빠부터 말해봐』『성당에 계시는 신부님이 되려고 했지』
『신부님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시잖아. 신부님 됐으면 나는 이 세상에 없었겠네. 그런데 왜 신부님 되지 않았어』『으응, 그건 말이야…』
딸애의 질문에 당황한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태 전 이놈이 국민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는『우리 아빠는 신부님도 했다』며 또래들의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가 헛소문을 퍼뜨린 죄로 집사람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오래된 사진첩에서 수단을 입고 한껏 폼을 잡은 내 학창시절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 큰애가 생각한 것처럼, 나는 사제의 꿈을 안고 대학시절을 신학교에서 보냈다. 그것도 5년이상 교회돈을 축내면서, 그 덕분으로 지금 당장 입에 풀칠하는 데는 큰 걱정이 없고, 교회와 신앙에 대해서도 제법 논리정연하게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내 삶은 어떠한가? 물에 물탄 듯 그저 덤덤할 따름이다.
훗날 큰애가 자라서『아빠는 한때 사제의 꿈을 가졌던 사람이잖아』라고 말했을 때 또 대답이 궁색해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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