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는 일본이 있다. 없다로 야단법석을 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일본은 역시 실세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도 좋지 못하고 막연한 민족적 우월감이나 열등감도 건강에 해롭다고 본다. 전자제품 일제는 좋아 하면서도 일본은 무조건 싫다는 식의 양면 감정, 대일 무역 종속은 날로 심화되는데 극일이니 떠드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본다.
환경운동이나 생협때문에 일본을 몇차례 다니면서 나는 이것저것을 배웠지만, 지진의 도시 고베 방문은 처음이다. 이번 방문에는 우리 서주교님, 사무처장 신부님, 안동교구의 조창래 신부님, 김학록 신부님, 사회복지회의 박병기 신부님, 최용병 신부님, 들꽃마을 최영배 신부님, 정신병원의 정삼덕 신부님, 그리고 담당 평신도들과 함께 했다. 같은 주제와 문제를 두고 두 교구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직은 70년의 역사를 가진 고베 생협에 대해 역사도 짧고 노하우도 적지만 우리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협도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박3일의 짧은 연수기간이기 때문에 고베 생협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한가지 느낀 점은 수많은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단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양식, 인간적인 지역사회, 소비자 중심의 유통구조, 협동 구매방식,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가공 등으로 삶을 검소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고베 지진의 상처들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일본 특유의 철저함과 꼼꼼함으로 거의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고베 생협의 실제적인 과정을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지나간 역사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1921년 까가와 도요히고 목사가 고베 생협을「사랑과 협동」이라는 이념으로 만들었을때 일본은 우리나라를 합방한지 10년 뒤가 아닌가. 그 당시 생협이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나라에는 두레라는 생협조직이 있었다. 이 두레는 지역자치에 의한 마을 공동체의 기본조직이었다.
일본의 강요된 근대화, 공식적인 식민주의(1910~1945)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주민자치에 의한 두레 공동체를 파괴했다. 국민 경제의 이름으로 지역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으로 자연적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았던 우리 농민들로 하여금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서 분리 시키고 공동체의 자율에 관한 감각을 잃어 버리게 했다. 문제는 아직도 그런 식민주의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생협은 우리의 전통적인 두레 공동체를 오늘날에 다시 세우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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