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인명(聖人名)을 택하는 영세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본보의 보도가 있었다.
본보가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수도권에 거주하는 신영세자 1천1백41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성인명 선택여부를 조사한 결과 0.7%에 해당하는 9명만이 자신의 세례명으로 우리성인들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숫자는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 103위 성인이 시성된후 1-2년동안 한국성인명을 선택한 영세자가 10%를 넘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10년 사이 너무나 엄청난 감소를 보인것이다.
그럼 왜 이처럼 충격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것일까? 그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순교신심의 퇴색과 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먼저 순교신심의 퇴색은 시성식을 전후해 고조됐던 우리성인 공경열기가 식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85년도를 고비로 신영세자들의 우리성인명 택하기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우리에게는 한꺼번에 103위나 되는 성인이 무더기로 탄생되고 더구나 성인탄생이 그토록 까다로운 기적 심사없이 이루어져 후손들에게 순교신심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곧 너무 쉽게, 그것도 한번에 대량으로 성인들을 갖게 된것이 단시일에 그들을 쉽게 잊어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실지로 103위 성인중 프랑스선교사 10명을 제외한 93명의 한국성인 가운데 그이름이나 삶 영성 등이 잘 알려진 성인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잘 알지 못하기에 영세자들이 세례명으로 택할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순교성인들이 잘알려지지 못한 원인은 그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제대로 밝혀줄 출판물이나 시청각자료, 교육의 기회 등이 태부족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없다. 기존 몇종의 103위 성인전은 거의가 내용이 대동소이하고 천편일률적이어서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과거부터 이어져오고있다.
근래에는 103위 성인은 제쳐둔채 교회창립에 관련된 순교자들이나 신유박해 순교자들 그리고 지방교회 순교자들을 시복시성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아이러니」를 느끼게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성인들을 세례명으로 택하는 신자들이 급격히 준 것은 우리교회에 하나의 적신호로 볼수 있다. 이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오로지 신앙때문에 생명마저 초개처럼 버린 우리의 선조 순교성인들을 그 후손들이 외면한다면 우리 교회는 앞으로 어디에 뿌리를 박고 지탱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바람이 우리교회에도 새롭게 일어나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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