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든 자기가 짊어질 십자가가 마련되어 있는 게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 한다. 살아가는 데 힘들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랴마는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아픔의 무게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귀로 들어보지 않고는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일생을 지내야 하는 맹인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어디 그 뿐이던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 남의 도움 없이는 살길이 막연한 맹인들의 가슴은 얼마나 피멍이 들겠는가.
「그것은 그들의 운명일 뿐, 나하고는 생판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들의 팔자소관으로 돌려버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혼자만 먹고 사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삶은 금수보다 나을 게 없지 않은가.
며칠전 전철 안에서 내가 아는 맹인 한 사람을 만났다. 흰 지팡이를 앞세운 채 하모니카로 구걸을 호소하며 다가오는 그는 분명 나하고 두어 차례 인사를 나눈 사람이었다. 몇해전 취재 관계로 가난한 맹인들이 모여 사는「성모자애재활원」을 방문했고, 그뒤로 오며가며 그곳을 몇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예닐곱 평의 그 맹인 방에서 차도 얻어마시며 딱한 집안사정도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철에서 그를 맞닥뜨렸을 때 건성으로 동전 몇 닢을 건네고서는 아는 체 하기가 영 내키지를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쑥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선뜻 내 얄팍한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포수에 쫓기는 노루처럼, 지금도 세인들의 까가운 눈총을 피해 서울의 한갓진 곳에 살고 있을 그를 난 이방인처럼 대하고 말았다. 어무리 고단한 삶이라 하더라도 오는 정 가는 정만 있다면 그래도 노래 한가락 부를 마음의 여유가 있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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