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을 지나 20여분 걸어 찾아간 어느 대문이 큰 집으로 들어가는 김선생을 따라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안방 건너방 사랑방 등에 가득 모여 있었고 대청 마루엔 하얀 제대가 환히 밝았고 음식 냄새며 집안 분위기가 잔치집 같이 흥청거렸다.
11월말이지만 저녁에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 코끝을 아리게 하는데도 방마다 미닫이 문을 아예 떼어 내었고 젊은 아낙네들은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기에 바빴으며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방방이 모여 이야기 꽃이 대우를 해 주며 따뜻한 아랫목 자리를 내어 주는 시골 인심과 사랑이 차가운 내 가슴을 훈훈히 녹여 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은 놀라고 당황했다. 이런 벽촌에 살면서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몇십리씩 걸어서 판공성사와 미사참례를 하러 온 많은 교우들을 보며 나 자신의 게으름과 교만함이 부끄러워졌다.
선생님이라고 특별히 안방에 계신 신부님께 인사 소개를 시켜 주신 공소회장님은 세례를 안 받은 나를 손수 전교회장님께 인도하여 주셨고 나는 더 이상 도망갈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도적과 같이 찾아오신 주님을 맞이해야 했다.
나는 김선생을 대모로 마리아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그때서야 조금 알아 듣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서둘러 영세 입교 시키신 하느님의 더 깊으신 뜻을 나는 후에야 알게 되었다.
1970년 1월. 마침 겨울방학이라 나는 서울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느낫없이 속달편지가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이모님이 보내신 편지였다.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이후 이모부님의 사업을 도와 드리며 정양중이시던 아버지는 10년만에 다시 쓰러지신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서둘러 유성에 내려 간 다음날 아버지는 이모님이 주신 데세를 받고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 나시어 한시간 후에 운명을 하셨다. 나는 객지에서 당한 갑작스런 불행을 감당하기엔 아직도 어린 23살의 나이였고 맏상제인 동생은 겨우 16살의 빡빡머리 고등학생, 막내가 이제 10살이었다.
이모님은 서둘러 유성성당에 연락하시니 마침 전교회장님이 죽음을 예상 하셨던지 두어달 전에 유성성당으로 전화를 하여 당신 소개를 하고 성당에 나가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전교회장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유성성당에서 각 공소에 연락하셨고 10리 20리가 되는 곳에 사시는 연도회원들은 매서운 음력 섣달 추위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나의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하느님께 인도해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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