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은 늘 재생된다. 살아 움직인다. 때론 뜨겁게 때론 아프게 나를 찾아온다. 나에게는 원형적인 기억이 하나 있다. 이 기억은 나의 정서, 감정, 심지어 소망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지금의 이 삶의 양식까지도 이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억은 세계와 인간, 만남과 사랑, 따뜻함과 차거움까지도 해석의 도구가 아니든가.
몇 살인지(5살?)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때 나의 상황과 처지를 지금도 명료하게 느끼고 있다. 검은 고무신을 신고 초겨울에 어머니를 찾아 경주로 나섰다. 왜 나는 부산서면을 떠나야 했는지 그냥 추측할 뿐이다. 엄마한테 가고 싶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 당시 차비로 25원이었다. 부산에서 경주까지 기차로 3시간 정도였는데 나는 늘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기차가 설 때마다 큰 물탱크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폈다. 지금도 경주 역에는 물탱크가 있는데 하마트면 울산에 내릴 뻔 했다. 그 당시 울산에도 물탱크가 있었기 때문에 울산이 경주인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경주하면 이 물탱크가 떠오른다. 저녘무렵 경주 역에 내려서 나의 어렴풋한 전(前)기억으로 무조건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탱자나무가 있는 집이 나오면 외갓집 동네라고 생각하고 논밭을 가로질러 1시간 만에 외갓집에 도착했다. 외할머니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는데 어머니는 그때 장사하러 가고 없었다. 이것이 나의 원(原)기억이다.
나에게 외할머니는 따뜻함이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는 따뜻함을 참 좋아한다. 나는 이 따뜻함을 찾아 어릴 때 가출하였던 것이다. 나는 늘 혼자서 자취하면서 자랐고 사람들 속에서 함께 있는 것이 늘 그리웠다. 하늘처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삶이 부질없고 덧없고 헛된 것 같다.
나는 이제 다시 혼자서 그 어릴 때처럼 그 원형적 따뜻함을 찾으려고 허허 벌판에 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특히 그러하다. 요사이 삶이 너무 허망하고 중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사람이 희망이 있을 때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따뜻함=사랑이 없을때 운동이니 사업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시 원형을 향하여 나 어린 시절처럼 길을 떠날 수 있을까? 융이 말하지 않았는가? 영혼의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지나간 과거로 향하여 여행을 해보는 것 오늘의 체험이 내일의 기억이 된다. 어린 왕자의 생 떽쥐베리는 자신의 비행기가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대한 기억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젖은 눈시울로 검어진 기억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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