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주님을 볼 수 있었고 그분들의 사랑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용서와 사랑 그 자체였던 것이다.
불과 일주일 동안 우리집은 다시 풍비박산이 났고 우리 삼남매는 어느날 고아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사글세 단칸방에 동생들을 남겨 놓고 돌아서는 내 마음은 잿빛 하늘이었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시작되는 내 학교생활 속에서 나는 변화되어 가는 내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그 선생님들께 고해성사를 보는 마음으로 용서를 청하고 나누어 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눈물의 편지를 썼다.
하느님은 한없이 교만한 나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내 어머니를 거두어 가신 것이다. 나는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잃는 고통중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 불현듯 닥친 많은 어려움을 감당하기에 나는 많이 힘들어 했었다. 어머님이 남기신 부채, 동생들의 학업 중단 등 25살의 나이로 갑자기 닥친 폭풍을 이겨 나가기엔 나는 너무 힘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좋은 치유제가 되었고 하느님은 늘 나에게 도와주는 사람을 보내 주었다.
어머니를 묻고 온 후부터 나의 삶은 나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위한 삶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느님은 나를 이렇게 변화시키시려고 작은 아픔에서부터 큰고통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구원사업을 펴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기회도 주셨다.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내가 혼신을 다해 일할수 있었던 것은 조암의 김신부님 덕분이었다.
성가책이 없는 교우들을 위해 나는 신부님이 뽑아주신 성가를 밤새워 원지에 악보를 그리고 썼으며 가난한 성당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학교의 도움도 받아 성가피스를 만들었다. 신부님은 90cc 오토바이 뒤에 30여권의 성가피스를 싣고 공소마다 다니셨고 그래서 성가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예비자교리, 견진교리 등도 나는 신부님이 뽑아 주신 내용을 며칠씩 원지에 써서 책으로 만들어 신부님께 드렸다. 그 작업은 나로 하여금 며칠씩 몸살을 앓게 했지만 내 육신의 고통보다 몇배 더 큰 기쁨을 나는 가슴 가득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진정으로 봉사하는 삶이 얼마나 기쁜 삶인가를 체험한 것이다.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 조암성당에서의 일들을 잊을 수 없다.
불기없는 교실에서 5,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성가연습을 하던 일. 성당 구경조차 못해 본 아이들을 데리고 시오리를 걸어서 미사 참례 하던일. 낯선 미사예절에 어리둥절한 아이들과 함께 목청 다해 성가를 부르던일. 교우가 아니면서도 나를 믿고 자녀들을 성탄전야 미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학부형 등 내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손발이 시려워 동동거리며 연습한 성가를 자정미사에 실력발휘한 우리 아이들의 솜씨는 웅장한 성당에서 훌륭한 성가대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순간에 진정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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