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의 의무축일 해제를 교황청에 건의하였으나 불가하다는 대답을 받았다고 주교회의 사무처는 1995년 10월 13일자로 발표하였다.
주교회의가 이런 건의를 한 배경은 신자들이 이 날을 의무축일로 지내는데 따르는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본당 신부님들은 성탄을 준비하기 위해서 판공성사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 축일을 지키고 못해 또다시 고해소를 찾아 오는 신자들이 상당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사정에 미루어 볼때 1월 1일에 미사에 참례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12월 31일 밤에는 대부분의 성당에서 송년미사나 그에 상응한 전례가 있다. 그리고는 가족, 친구 친구끼리 밤늦게 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송년과 신년모임을 갖는다.
또 1월 1일에는 많은 이들이 친지들이나 직장동료, 상사들을 방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튼날 미사에 참례하기란 상당히 어려울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주교회의는 1월 1일 의무축일에서 해제하자고 건의했던것으로 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새해 첫날에 성모마리아 대축일을 지냄으로써 세속화 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에서 인생의 최종 목표인 초월적인 삶의 증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한국 주교회의의 건의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물론 옳은 말이다. 나날이 편리위주로 치닫는 세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삶안에서 분명하게 신앙을 증거해야 하며, 특히 한국과 같이 비신자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그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신앙의 근본문제에 관한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신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규정이라면 제고해봐야 할것이다. 1월 1일을 의무축일로 정하게 된 것은 다른 나라의 교회와 비교해서 한국교회에서 지내는 의무축일이 너무 적다는 이유에서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너무도 한국사정을 모르는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국가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교를 믿어 왔고 사회전체에 아직도 그리스도교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국가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평일에 해당되는 예수승천 축일, 성령 강림축일, 성체성혈 대축일, 성모무염시태 축일 등을 국가 공휴일로지내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곳 교회에는 의무축일의 수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그곳 신자들이 이 축일에 성당에 잘 가느냐하면 그렇지가 않다. 한마디로 유럽의 교회와 한국 교회를 표면적으로만 비교해서 한국 교회의 의무축일의 숫자를 늘렸다는것은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것을 왈부 해 보아야 별 실효는 없으리라 그래서 실천적인 제안을 해본다,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을 경건하게 보내고자 미사에 참례하는 곳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꼭 이날 하루만 국한 시켜서 의무적으로 신자 모두 미사에 참례하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구정과 추석은 그날 하루만이 아니라 앞뒤의 하루 이틀정도를 더해서 며칠씩을 명절로 지낸다. 그리고 새해는 당일만이 아니라 일주일 내지 열흘을 새해의 분위기에서 보낸다. 이런 것을 고려해서 1월 1일 미사에 참례하지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후 일주일 혹은 열흘이 내로 (가능하면 온가족이 함께)평일미사에 참례해서 성모님께 자신과 가정 그리고 우리나라를 의탁하면서 한해를 시작하라는 규정으로 바꾼다면 더 설득력있고 실천도 수월하지 않을까?
우리는 한국 신자들이 교회의 규정을 지키려는 성의는 다른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도 휠씬 앞선다. 주일미사 참여율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편이다.
이렇게 성의있는 한국 신자들 대부분이 1월 1일을 의무축일로 지내기 어렵다고 얘기하면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실천이 어려운 규정을 그냥 지키라고 강요한다면 그 규정에 포함된 의미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규정 자체도 의문시 된다. 의미를 느끼면서 자발적으로 교회 규정을 실천하는 길을 열어주는 지혜를 주교단에 기대해 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