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다보면「특별자금」이 필요할 때가 의외로 많다. 직원들과 식사 한끼를 한다거나 술 한잔을 나누기위해서도 얼마만큼의 자금은 필요하다. 직원들의 경조사는 또 어떠한가? 결혼했다 하면 곧 돌잔치요 젊은이가 많은 직장의 경우 부모들의 회갑, 진갑잔치 등 숨돌릴 사이가 없다. 연세가 지긋한 부모님들을 모시고 있는 직장인들은 마치 순서를 정하기나 한것처럼 갑자기「그때」가 닥치곤 한다.
직장밖으로 눈을 돌려도 특별 자금이 필요한것은 마찬가지다. 회사가 담당하는 공식적인 접대 외에도 마음을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만큼 필요한 것이 특별자금이다. 마치 그것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위해 꼭 필요한 양념과도 같다. 특별 자금을 얼마만큼 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기도 하는 이 풍토는 이미 오랜세월동안 우리 사회의 고정된 정서로 자리잡아 버렸다.
관가에서부터 시작된 이 이상한 풍토는 이제 우리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작은 직장이라 하더라도 한 두해 관록이 붙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요청되는 것이 이 특별자금이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 자금의 단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한달 경조사비가 한달 봉급보다 많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는게 많은 이들의 하소연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다달이 받는 봉급중에서 필요한 자금의 일부나 또는 상당부분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봉급을 송두리채 통장으로 빼앗겨 버리는 한국의 남편들은 한푼의 용돈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아침마다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이미 자연스런 한국의 풍경이 되었다.
그러니 월급외에 생기는 특별 보너스나 수당 등 가외로 생기는 자금을 아내몰래 간수하기 위한 남편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아주 자주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는 장면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편들의 특별자금 감추기 작전에 대한 방송 프로까지 등장하기도한다. 「쫀쫀하고 째째한」사람으로 낙인 찍히지 않으려는 남편들의 몸부림과 빨리 내 집을 장만하려는 아내들의 몫이 되는것은 당연지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같은 작은 실랑이들은 오히려 사람사는 냄새로 여겨지기도 한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비자금과 역시 비정상적으로 그 자금을 남용하는 우리사회의 비정상적인 사회 정치 풍토에 있다. 최근 불거진 노태우 전 대통령의 5백억원에 달한다는 비자금(당사자 쪽의 주장은 정치 자금 또는 통치자금) 문제에 국민들은 황당할 뿐 할 말을 잃고 있다.
계속 밝혀져봐야 알 노릇이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미뤄볼 때 노씨의 비자금은 그동안의 소문대로 수천억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구나 그 자금은「쓰고 남은 돈」이라고 노씨의 비자금 관리인 이현우씨는 증언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은 쓰고 남았다는 3백억 또는 5백억원의 자금외에 쓰고 남은 또다른 비자금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의심할수 밖에 없게 된것이다.
실제로 노씨는 이번 사건 초기 강력한 몸짓으로 자신을 옹호했다. 결국 노씨는 곧바로 드러날 거짓말로 국민을 다시한번 우롱하고 말았다. 국민들의 경악과 분노가 보다 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 겹겹히 가려져 실체를 알수 없었던 노씨의 거짓말을 현실로 대면하게 된 우리의 현실에 있다. 그가 직접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들이 바로 우리 경제를 선도해나가는 대기업들의 비정상적인 자금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 역시 우리의 비애감을 더해주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유독 노씨는 깨끗한 정치를 내세웠고 검은 돈의 정치자금화를 강력히 추방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이 터질때 마다 그는 보통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거듭 확인했으며 아울러 깨끗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믿어달라고 주장해왔다.
아직 초기단계라 이번사건의 결론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나돌았던 비자금설이 현실로 터진 지금 그 물꼬는 막을수도 없고 또 막아서도 안될 것이다. 만일 이번 사건이 어느 한계점에서 또다시 막혀버릴수도 있다. 그렇게 될때 우리는 깨끗한 정치를 통해 깨끗한 사회풍토를 만들고 나아가 미래 세계를 선도해 나가고자 하는 희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할것이다.
검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했으니 그 돈은 검을수 밖에 없다. 검은 돈으로 하는 정치가 깨끗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제 그같은 정치는 추방되어야 마땅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우리 사회안에 팽배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비자금문제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것 같다. 관에서부터 기업, 그리고 작은 집단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자금은 정당하게 표출화시켜 사용토록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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