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산과 들은 참으로 풍요롭고 아름답다. 푸른 잎속에 어찌 저리도 노란 혹은 붉은 색조들을 숨기고 있었을까.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아름다움도 탐색된 낙엽 한장으로 흙에 돌아갈 것이다. 이 끊임없는 계절의 순환, 그 끝은 어디일까. 그래서 어떤 이는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이 그 모두 진정은 아니라고 노래했던가.
전도서는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고 입을 열때가 있으면 입을 다물 때가 있다고 했다. 이제 결실의 계절답게 우리 사회도 지난 세월의 공과를 거둘 때인가 보다. 입을 열 때인가 보다.
선정적인 신문, 방송들 마져도 제철 만난듯이 냄비에 물 끓듯이 비자금 도적을 난도질 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그 도적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믿어 주세요를 반복하며 덕스럽게 웃는 모습을 유권자들의 머리 속에 심어주려고 앞장서온 장본인들이 아닌가. 저들이 저렇게 앞장서서 귀 크고 복스러운 호인의 범죄행위를 들추어내는 것을 보면 과연 정한 때가 온 것 같다.
이 정한 때를 맞아 우리가 그저 아침 신문, 저녁 TV를 통해 분노하고 흥분하다가 일의 앞뒤를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번 비자금 파동을 보면서, 아니 비자금이란 말 자체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선택된 용어일진대 뇌물사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수천억대의 뇌물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서 제대로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세가지 질문이 있다.
그 첫째는 천문학적 뇌물 범죄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야 문제로 드러났는가 하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뇌물 징수 및 정치 자금 운영문제는 오래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었고 현직 장관의 입에서까지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나 언론은 그저 뜬 소문이라고 강변해 오다가 왜 지금에야 사법처리 운운하며 언론의 냄비위에 올려놓고 펄펄 끓이고 있는 것일까?
만약 여기에 어느 특정집단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진작 만천하에 밝혀졌을 일이 아니가.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 집단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뜻에서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은 마치 무협지를 읽고 있는 듯하다는 슬픈 농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협지는 작가의 붓끝대로 결론이 갈리지만 현실 역사는 「정한 때」대로 가는 법이다.
이를 모르는 정치가들은 전임자들이 「정한 때」대로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현실을 무협지 수준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사물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일을 반복하니 참으로 가엾다.
두번째 물음은 뇌물문제로는 이렇게 법석을 벌이면서 왜 5ㆍ18 문제는 온갖 억지 논리를 동원해 끝까지 감추려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이니 돈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해서 그렇다는 말일까. 다른 숨은 의도가 없다면 돈 수천억원을 뇌물로 착복하고 그 대가로 재벌들에게 특혜를 준 일 못지않게 아니 몇배 더 수많은 국민을 살상한 일을 엄히 다스려야 할 일이다.
근래에 들어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5 ㆍ18 진상규명 움직임이 이번 사태 때문에 뒤로 가려져 버리는 것은 의도되었든 아니든「정한 때」를 놓쳐 버리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노씨 두사람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백담사 가는 사태의 근원은 5 ㆍ18 에서 시작된다. 근본원인에 있어서의 불법을 청산하지 않은 채 그 결과의 일부만을 가지고 떠드는 것은 진정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할 뜻을 가진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세번째는 현 정권이 이번 뇌물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선거 자금을 왜 신속히 밝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소위 문민정부」라든가「사복 정부」라는 평가절하를 받지 않으려면 범죄인을 처벌하는 스스로의 손부터 깨끗이 하여야 할 것이다. 검찰의 수사 이전에 스스로 부정하게 형성된 자금을 얼마나 받아 대통령 선거 때 사용했는지를 밝히지 않고는 남의 도덕성을 탓할 자격이 없다.
또한 진상규명의 결과도 믿을 수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전도서의 구절이 진리임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공평무사하게 정의가 이루어져야 할 세상에 불의가 판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느님께서 때를 정하시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심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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