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으로 1년중 마지막 달인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위령성월은 지나온 한해동안의 삶을 정리해보며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묵상해 보는 시기이다. 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계절인 것이다.
특히 언제 닥칠지 모르는 나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로지 신앙만 있는 천상적 기쁨, 빠스카 신비를 받아들이는 신앙의 심오한 신비를 사는 달인 것이다.
흔히들 죽음을 생각하면서 「희생적 삶」을 강조하지만 죽음을 묵상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기쁨을 창조해내는 삶, 즉 부활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너희는 단식하기 위해서 (얼굴을)찌푸리지 말라』는 말씀에 담긴 뜻을 재음미해봐야 한다. 제의색깔이나 수도자들의 수도복 색깔이 점차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화해 가는 의미도 바로 이런 연유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런 시각은 천상기쁨을 현실안으로 끌어내려서 그 기쁨속에 살아가는 신앙자세를 다져보는 것이야말로 위령성월을 사는 올바른 방법임을 일깨워 준다.
그리스도인이란, 십자가 위에서 죽었지만 3일만에 부활하여 현재도 세상 끝까지도 우리와 함께 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부활한 그리스도의 눈동자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또 『그분이 살아계심으로 우리도 살고있다(요한14,20)』며 우리도 사랑의 생명으로 살아갈때 영원한 생명으로 올려진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나날이 되풀이되는 삶은 지루하고 판에 박힌듯 아침이 있으면 꼭 저녁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죽음만은 한번 깨고나면 결코 「죽음의 암흑」에 연결되지 않는 한번뿐인 부활의 아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부활을 찬미하고 알렐루야의 대합창에 화합하는 동시에 『이제와 우리 죽을때에 우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종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메시지를 남겨주고 이승을 따나간다고 한다. 형태를 달리해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그 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리하여 서로를 소중히 해주십시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한없이 고귀한 것입니다』라는 것이다.
우리 말에 「삶, 사람, 사랑」의 어원은 하나라고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죽는 순간까지 기다릴 것이 없이 「지금」 당장 그 뜻을 살도록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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