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놀라울 만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온갖 종류의 ‘OO스타일’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 세련미는 조금 덜하지만, ‘성당스타일’도 나왔다. 서울의 한 본당에서 신부님과 청년 신자들, 그리고 애꿎은 수녀님까지 동원해서 만든 ‘성당스타일’, 나름대로 종교계에서는 빅 히트를 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패러디를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이나 작품이라고 정의하는데, 사실 싸이의 원작이 더 이상 익살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웃겨서 이들 ‘아류작’들은 어쩌면 패러디의 장점을 살릴 여백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원작의 기본 틀, 몇 가지 독특한 춤과 남과 여에 대한 해석, 전체적인 영상의 흐름 등을 답습해서 특수한 계층이나 집단, 환경의 특징들을 원작의 그것들과 치환한 것으로 모방에 가깝다. 여기에는 ‘전도’(subversion)나 ‘위반’(transgression)과 같은 패러디적 기법의 핵심적 요소는 있지 않다.
하지만 ‘성당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이 스타일 제작자들의 본의가 어떻든간에, 그리고 영상 세련미가 다소 떨어진다 해도, 춤과 노래의 급수가 조금 안타깝다고 해도, ‘성당스타일’이 주는 사목적인 의미는 꽤 무게가 있다. ‘성당스타일’은 다수의 다른 아류작들과 마찬가지로 원작의 형식과 스타일을 거의 대부분, 성당 안에서 촬영한 영상 안에 어르신들이 보면 조금 역정을 낼 수도 있을법한 장면들까지, 그대로 모방한다. 하지만 그것이 갖고 있고 일깨우는 가치관은 완전히 전도된다. 전도된 가치관은 특히 가톨릭 ‘싸이’라 할 만한 신부님의 자신만만한 ‘선포’ 때문에 그 설득력이 배가 된다.
필자는 이런 종류의 시도가 어쩌면 종교나 초월에 근본적으로 공격적인 현대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접근하는 유력한 ‘성당적’ 스타일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패러디는 종교나 영성에 유리한 문화적 수단 혹은 기법이 아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엄숙한 주제와 소재를 비틀고 뒤집어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패러디의 의미를 최대로 확장한다면 물론 모방과 동의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엄밀한 의미에서 말할 때, 패러디는 원작을 모방하고 답습하지만, 원작과는 다른 의미 체계를 형성한다. 그게 아니라면 패러디라는 기법이 왜 존재해야 할 것인가? 문학적으로 볼 때, 미국의 영문학자인 C. 휴 홀만은 진지한 예술 작품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작업을 패러디로 보았다. 진지한 의도와 말투를 조롱하고, 엄숙하고 거룩하려는 것을 희화화하고, 높은 품격을 비속화하는 것을 패러디로 봤다. 포스트모던의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권위에 대한 냉소와 절대에 대한 도전은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됐다. 권위와 절대의 억압에서의 해방이 현대인의 사고방식이고, 주체성의 회복은 권위에 대한 도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공허하거나 가장된 거룩함과 엄숙함이 현대인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래서 ‘패러디’의 기법은 바리사이적인 율법학자의 이미지, 세속적 권력에 눈 먼 중세 수도원장 등 세속적 가치가 은밀하게 스며있는, 성스러움의 상징적 인물이나 물건에 대한 희화화에 오히려 더 유리하다.
그런데 ‘성당스타일’은 세속의 형식과 틀, 대중문화의 히트상품이 지니고 있는 고도로 계산된 익살스러움과 대중적 호소력을 빌미로 이를 활용하면서도 그 가치를 역으로 패러디함으로써 가치의 전도와 도전을 꾀한다. 현대의 문화적 양식과 감성을 충분히 누리면서도, 그에 대한 적대감을 표시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모든 종류의 ‘OO스타일’들과 유리돼 있지 않고 함께 도열해서도, 그것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 중의 하나이면서도 차별화되는 메시지를 ‘성당스타일’은 유쾌하게 전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요청은 복음화에서 전통적인 분위기와 방법론에 대한 고수와 집착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당스타일’은 가치 전도의 재전도를 시도했고, 나름 성공을 거둠으로써 앞으로의 과제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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