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골목길 담벼락에 이마를 댄 술래가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크게 외쳤다. 다른 아이들은 술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열 개의 소리마디를 끝낸 술래가 휙 고개를 돌리면 아이들은 동작을 재빨리 멈췄다. 다시 이어지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바싹 다가서다 돌아보는 술래를 얼른 치고 달아나던 유년의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약이 올라 뒤쫓던 술래와 내달아 숨던 친구들의 얼굴이 무궁화 꽃송이처럼 활짝 피었다. 마을 어귀에 밥 짓던 연기가 엷어지고 밥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퍼지면, 아이들 발자국으로 어지럽힌 골목길도 해거름에 쉬어갔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무궁화 꽃 수놓기 운동’을 펼치던 남궁억 선생이 무궁화를 심지 못하게 감시하던 왜경을 조롱하고자 만든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추억이다. 지금은 추억놀이가 되었지만 가만히 새겨 보면 결코 빛바랜 기억만이 아니다.
여름 갈무리 길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크게 외치고 뒤돌아보자. 아련한 옛 동무의 자취에 한 분이 계신다. 앞에서 끌어주고, 위에서 굽어보는 것만 하시는 주님이 아니다. 기분 좋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큰소리로 외치고 돌아보면, 두 팔 크게 벌린 주님의 환한 웃음이 있다. ‘왜 내게만 이런 고통이 따릅니까’ 눈물범벅된 얼굴로 뒤돌아선 자리에는 십자가 지신 주님이 지금껏 나를 따르고 계셨던 것이다.
행복했거나, 이만큼이라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뒷배는 내 기도 소리를 묵묵히 따라오신 주님이었던 게다. 그러고 보니 온 사방에 무궁화 꽃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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