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면 곧 부서질 것 같은 문을 열고 들어서서 전기 불을 켜면 까맣게 깔려 있던 바퀴벌레들은 숨을 구멍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이 집에서 우리는 바퀴벌레와 공생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끔찍하게 느끼던 이 벌레도 이젠 한 식구가 된 것 같이 나는 그 생활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18세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둥그런 욕조가 덩그런히 놓여 있고 군데 군데 부서진 벽 사이론 작은 생쥐가 넘나들며 습기가 찬 벽은 검은 곰팡이가 지도를 그린 그 안에서 나는 자정이 넘도록 빨래를 해야 했다.
나에겐 더 이상의 슬픔도 후회도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학빈이와 함께 출퇴근하면서 지하철의 계단에서 학빈이와 함께 굴러서 바지가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었고 시커먼 검둥이가 따라와 무서움에 떨기도 하며 눈물이 마를 만큼 많이 울었다. 흐르는 시간은 내 영육의 아픔을 치유시켰고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내 가계부는 빈곤에서 조금씩 해방되고 있었다.
우리는 벙어리 구실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마침내 유태인들이 사는 동네에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민 온지 넉달만에 이민짐을 풀게 되었고 한국을 떠날 때 사온 오징어채며 고추가루는 곰팡이가 피고 좀이 나서 모두 버려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 네식구는 한집에서 산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그동안 윤희는 할머니와 지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찾지 못했던 성당을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마침내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인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미사참례를 하게 된 나는 십자가상의 주님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모든 아픔과 서러움을 한꺼번에 토해 놓듯이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흐느껴 울었다.
남편이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게 되자 남편은 한국사람이 경영하는 생선가게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곱게만 자란 남편은 생전 처음 생선 다듬는 막일을 하여 손은 얼고 생선가시에 찔려 덧났으며 새벽 5시부터 저녁7시까지의 중노동을 하면서 불평없이 잘 견디어 주었다. 나도 네일기술자가 되어 손톱을 만들며 단골손님이 늘어가는 대신 내 손은 갈려서 피가 터지고 그 상처에 아세톤이 들어가면 눈앞에 별이 튀는 아픔을 참아내면서 내 육신이 건강할 때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일했다.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주어진 삶에 나를 끼워 맞추기에 정신이 없었다. 언제나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아이 둘 만큼은 하느님의 자녀로 부끄럼없이 키우고 싶어 힘겨운 살림이지만 나는 아이들을 가톨릭학교에 보냈다. 나는 12년동안 많은 돈을 투자하며 가톨릭학교에 보냈던 것을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감사한다.
하느님은 나의 기도를 한번도 외면하지 않으셨고 늘 보이지 않는 나의 의지가 되어 주셨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운 이중언어의 환경과 인종차별의 아픔을 잘 이겨나가 늘 좋은 성적을 받고 정의롭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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