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우리 시대의 비전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안에서도 이루어지는 비자본주의적인 경제체제이기 때문이다. 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진 체제, 이것이야말로 우리 약자들의 꿈이다. 과연 진보운동의 새로운 방식과 한국사회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대안의 씨앗으로 협동조합을 생각할 수 있을까? 있다고 본다. 여기저기에서 생활공동체 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점은 참 희망적이다.
교육문제는 끝이 안 보인다. 학원, 놀이방, 유치원, 유아원, 어린이 집 등 제대로 교육을 하는 곳이 없다. 안 보내자니 뒤처질 것 같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육아교육에서 소외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교육에 자신감이 없고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우리 아이들은 마치 고아원에 사는 것 같다. 아이들도 바쁘고 허둥대며 산다. 먹거리는 식품첨가물로 오염된 독을 먹고 있다. 놀 땅도 없다. 새도 숲도 나무도 사라진 시멘트 공간에서 상품과 물건, 기호와 이미지에 둘러 싸여 대리 만족을 얻는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태적 공간으로부터 소외되어 공동체적 삶이 박탈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동육아는 한마디로 탁아나 보육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전업주부, 이웃, 지역 사회, 국가 모두가 함께 키우자는 것이다. 육아는 오직 여성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남녀 평등하게 장애인도 함께 키우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립, 분열, 이기주의 속에 사는 우리 아이들을 자연-인간과 더불어 사는 체험으로써 공동육아의 전망이 보인다.
물론 우리 교회 안에 다양한 유치원이 있는 줄 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것도 있고 여기저기에서 뜻도 모르고 이용하는 몬테소리 교육도 있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다. 아니 변해야만 한다. 물론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우리 현실이 참 교육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한 운동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공동육아운동은 공동체 삶의 방식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활협동조합이나 한 살림처럼 출자금으로 내면 된다고 본다. 내가 일하는 상인복지관의 어린이집을 보면서 저소득 노동계층이 주류를 이루는 이 지역의 육아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기존의 무슨 방식이 아닌 우리 모두 더불어 함께 참여하는 공동육아 방식이 좋으리라고 여겨진다. 우리 교회에서도 신협과 같은 또 하나의 은행을 만들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방식 즉 협동조합을 통하여 사회 성화(聖化)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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