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비명에 갔다. 한반도와 더불어 세계의 화약고로 긴장의 무대를 이루어온 중동에 평화의 봄을 심기 시작한 주인공, 라빈 총리의 서거로 온 세상이 충격과 슬픔속에 잠기고 있다. 유태인 극우파라는 이름으로 그를 향해 쏘아진 흉탄은 그 평화의 봄을 미쳐 완성시키기도 전에 속절없이 빼앗아가 버렸다·참으로 안타깝고 또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수 없다.
평화의 지도자로써 그의 큰 자취는 6일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장례식이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세계 40여개국의 국가원수급 지도자들과 2천5백여명의 해외 조문객이 줄지어 애도의 발길을 잇는 등 세계가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등 오랜 적대국, 아랍의 국가원수들도 거침없이 그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가 아랍의 국가들과 함께 되찾으려 했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세기의 화약고, 중동에서 평화를 향한 그의 역할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도 함께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평화에 목마른 이 시대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 중심에 서서 주역을 맡아온 그의 생애가 다시 한번 세계속에 부각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가 흉탄을 맞은 곳은 그가 주역이 되어 중동평화를 협상하던 바로 그 장소다. 평화를 선택한 그에게 총탄으로 맞선 세력도 그와 한 형제인 유대인이다. 물론「극우」와「과격」아라는 접두어가 붙기는 했지만…. 세상이 원한다고는 하지만 평화를 향하는 길이 얼마나 멀고 또 험한지 라빈 총리의 급서는 웅변해주고있다. 누구나 평화를 외치고는 있지만 평화의 걸림돌은 어디에나 있음을 라빈 총리의 비극적인 죽음은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열린 남 북 그리고 해외신자들의 만남 역시 평화를 향해가는 길이 멀고 또 먼 길임을 다시한번 실감케 해주었다. 이번 만남을 통해 50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음을 우리 모두는 절감했다. 아울러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세월의 깊이만큼 넘어야할 언덕이 산재하고있음을 함께 느껴야 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반드시 함께 걸어야 할 길임도 역시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함께 걷기 위해서는 만남이 필요하고 이번 모임을 통해 우리는 이제 겨우 그 한발을 내 디뎠다는데 동의했다. 따라서 그 한발짝에 그렇게 많은 기대와 그렇게 많은 희망을 모두 실을 수 없음을 수용해야만 할것이다.
남과 북 그리고 해외신자들이 함께 자리한 이번 만남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가에 놀랄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같은가, 얼마나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가에 크게 놀라기도 했다. 그것은 지난 세월 함께 공유했던 정서를 되찾아 함께 나누는 일이 보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곧 만남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만남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서 필요하다. 서로 무엇이 다른가를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한 동질성을 찾아 그것을 키워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만남은 우리모두에게 그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었다. 물론 그 길을 힘겹고 또 어려울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만남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여러가지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 첫째는 바로 우리 안의 걸림돌을 찾아 없애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진정 평화를 바라는가,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통일을 열망하는가 등등 나 스스로 평화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통일을 위한 노력에 얼마나 자기를 봉헌해 왔는가 역시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입으로는 통일을 노래하면서 그 통일을 위해 자기의 몫을 찾아 나누어왔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평화를, 통일을 아야기하면서 그것을 실현시키기위해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몫을 담당해왔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남과 북 그리고 회외신자들의 공식적인 만남으로 평화, 통일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만일 그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해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 다시 꿰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것은 한발을 내 딛지 않고, 첫 단추를 꿰지않고 미리 걱정부터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 일은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할 몫이다. 만일 그것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이라 말할수가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통일을 바란다면 우리 모두는 진정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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