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월 19일 주일을 앞두고 전국의 모든 성당 게시판에는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제하의 포스터가 나붙었다. 바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제28회 「평신도 주일」을 맞아 내건 슬로건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평협은 「생활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라는 제하의 평신도의 날 강론자료를 전국에 배포했다.
도덕성을 회복하자, 생활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자는 한국평협의 외침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호소로 들려온다. 그 어느 해보다 연이은 대형사건ㆍ사고로 국민들을 허탈감에 빠지게 한 1995년을 마무리하면서 이땅의 모든 신앙인들이 과연 복음말씀대로 살아왔는지 반성해보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본다.
교회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주일(그리스도왕대축일) 전(前)주일인 오늘 11월 19일은 모든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도(使徒)로 불리워졌음을 서로가 일깨우면서 그 사명과 책무를 다하기로 다짐하는 평신도 주일인 것이다. 전국 모든 본당에서 매 미사중 평신도가 강론을 맡고 특별헌금을 봉헌함으로써 평신도사도직운동의 활성화를 꾀하는 평신도주일을 맞아 특별히 기억나는 평신도가 있다. 그분은 한평생 「신도신학」을 연구하며 평신도운동에 몸 바쳤던 고 양한모(아우구스띠노) 선생이다. 지금부터 18년전 제10회 평신도 주일 한본당 강론대에서 던진 그분의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다.
『여러분은 자기가 속해있는 본당에 의무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신자다운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또한 여러분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을 갖고 가톨릭 신도로서의 책임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우리 신앙인 모두가 일상 생활로써 증거해 나가야 할 신자된 본분일 것이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평신도의 위상에 대해 자성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 일것이다. 먼저 성직자와 평신도는 각기 다른 기능과 고유한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주체성과 자발성과 자주성이 희박하다는 평가다. 대부분의 평신도가 개인구원 신앙에 머물러 있고, 다른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에 비해 실제생활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모범을 보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평신도들의 성직자 의존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자발성이 부족한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평신도의 교육기회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신도교육이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지금보다 성숙한 교회를 기대할 수 없다. 교회는 사제양성에 들이는 정성 못지않게 평신도교육, 특히 평생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의 자원이 평신도 교육에 충분히 이용되어야하며, 교육 내용에서 교회의 사회교리를 강조하여 평신도의 소명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이 교회 안에서의 활동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회 구성원 모두가 반성해 볼일이다. 평신도 활동의 고유 영역은 바로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평신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을 성취하는 자리이고 수단이다.
평신도의 교회 참여라는 것도 우선적으로 생활현장 교회로서의 충실한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일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마찰문제다. 이문제는 서로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쌍방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사목을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 결정하는 중에 예상치도 않았던 열매가 맺어진 사례도 있다.
1983년 프랑스 한 교구의 주교는 어느 본당신부가 건강 때문에 본당사목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을 때 평신도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본당사목에 참여시키기 위해 평신도와 본당신부가 함께하는 「동반자 사목」을 독려했다. 이러한 배려는 오히려 본당이 살아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례인 것이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또하나 주장하고 싶은 것은 교구내에서는 물론 전국적인 차원에서 「평신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기존의 전국 평협과 교구평협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교회는 그들과 함께한다는 인식과 인정을 실제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함께 하느님의 백성의 「동반 사목자」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고 「우리」라는 동료의식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전국 주교회의와 같은 교회내의 공적인 모임에서도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가 공적으로, 공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그러한 자리를 교회에서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수년전 「내탓이오 운동」을 벌여왔던 한국평협이 평신도의 날을 맞아 또다시 도덕성회복 실천 운동에 나섰다. 한국천주교회의 3백년대, 선교 3세기는 신도의 손에 달려 있다. 「내탓이오, 내탓이오」에 그쳐서는 안된다. 내탓임을 깨닫고 거듭 새사람이 되는 회심만이 우리 신도들의 신앙의 쇄신을 가능케하며 근본적으로 변혁을 가져오도록 하게 한다. 진정으로 참 회심만이 산 희망의 실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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