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일 저녁 신앙일기를 씁니다. 그것은 주님께 올리는 기도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렇게 안정된 마음으로 제 생활을 적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나 혼자만 고통속에 사는 것 같고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에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두살 되던 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언니손에 자라야 했던 저는 1950년 2월 눈보라가 매서웁게 몰아치던 어느날 언니손에 이끌려 고향 논산을 떠나 산 설고 물 설은 함창의 어느 집에 양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열살이었습니다. 안떨어지려는 저에게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떼어 놓고 간 언니는 몇년을 하루같이 눈물로 기다려야 했던 어린 마음에 너무나 큰 상처를 남겨주었습니다.
말이 양녀이지 그곳에서의 나날은 노예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른들의 회초리와 꾸지람속에 어린 나이에도 매일 논밭에 나가 쉴 새 없이 일을 해야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었고 학교에 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글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밤마다 혼자 공부를 해서 한글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설움의 세월은 어느덧 열네해가 흘러 제 나이 스물넷이 되던 해에 시집이라고 왔으나 가정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한데다 남편은 도무지 생활에 의욕이 없고 술 마시고 부수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육십 평생을 살면서 육개월은 일해서 돈을 벌어온 기억이 있는데 그때가 신혼 초였습니다.
살기 위하여 제가 나서서 벌어야 했는데 배운것도 없고 농사일 말고는 해본게 없는 저로서는 남의 집 파출부밖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생기면서 남의 일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리어커를 놓고 호떡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를 만나 할만한가 물어보니『밥은 먹고 살아요』하는 말에 저도 한번 해보고 싶으니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가루 반죽 하는것과 구워서 파는것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곧 리어커 한 대를 구입하여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자리를 잡아 호떡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어떻게라도 살아 보려고 애썼지만 남편의 주벽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술을 안마시는 날이 없고 장사하는데 와서 소란을 피우는게 그이의 일과였습니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돼지고기 반근을 샀는데 정육점 주인이 이것 저것 자투리 고기를 섞어 한근도 넘게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맛있게 끓는 찌개냄비를 보면서 군침을 삼키고 있는데 술 취해 들어온 남편은 찌개냄비를 마당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는 남편과 다투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집 주인이 좋아할리가 없고 우리는 수없이 방을 옮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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