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란…★
지금은 A교구의 중진이신 Y신부님은 교구가 분가되기전 D교구의 K시에서 악동으로 그 명성을 드날리던 소위 문제아였다.
재산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어서 고교 졸업 후 대학진학을 부모님으로부터 권고를 받고 응시했으나 보기 좋게 낙방을 하고 말았다.
지역 유지이며 불교신자인 아버지는 아들의 성품을 잘 아시는지라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유서깊은 절간에다 맡겼다. 물론 주지스님께 단단히 부탁하여 일체 외출을 허용치 말고 오로지 학업에만 정진토록 엄하게 지켜 주시도록 신신당부 했으며, 그러한 아버지를 위해 짐짓 염려 마시라는 표시로 Y군은 아버지앞에서 아예 눈썹까지 밀어 보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삼일 째 되던 날, 외출하고 싶어 미치고 팔짝 뛸 지경에 이르자 스님께 시내에 잠시 나가 문제집 한 권 얼른 사오겠다고 속이고는 그래도 창피해서 눈썹까지 덮히는 털실모자를 쓰고 서점엘 갔다.
문제집이 아직 나올리도 없는 2월인지라 빈손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아무거나 좀 어려워 보이는 책 한권을 사서 들어갔는데 그 책이 공교롭게도 천주교 관계서적이었다.
이리 저리 뒤적여 보니 참 수준(?)있게 어려워 보였는데 한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이게 영언지 뭔지 모를 꼬부랑글씨가 자주 눈에 띄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그게 라틴어인가 뭔가 하는건데 천주교 신부들이 더러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옳지! 잘 됐다. 외출 구실이 하나 생겼네』하고 매우 긴 단어 하나를 스무번도 더 외워서 시내에 있는 k성당 사제관을 찾았다.
눈썹도 없는 녀석이 절에서 공부하다가 모르는게 있어서 왔다고 하며 거룩하게(?) 라틴어 문제를 꺼내는 이 낯설고 당돌한 소년을, 지금은 D교구의 원로 사제로 계시는 E신부님께서 친절하게 맞아 주셨다.
『무슨 문제지. 학생?』
『예, 제가 소위 라틴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가지고 에-, 공부를 좀 하고 있는데 에-, 그 라틴어라는게 말입니다. 신부님도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어려운게 되놔서 이렇게 염치불구 하고 물어보러 왔으니께 이해 해 주이소』 하고 서두를 장황하게 꺼내더니『저, 신부님 라틴어에「뜨라시쇼날리수므스」라 카는 말이 있던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뭐라고? 학생 다시한번 말해 보게』그러자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신부가 뭐 아는게 있겠나, 똑똑하면 지가 장가 못가고 신부 노릇하것나?」하며 『「뜨라시쇼날리수므스」요』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재차 물었다.
그러자 신부님이 고개를 갸웃 하시더니 종이와 연필을 주시며『학생, 여기에 한번 적어 보게』하시었다.
『그냥 모른다 칼라니께 창피시러븐갑지?』하면서 종이를 얼른 받아 들고 「Tracisionalismus」하고 힘차게 척 써보였다. 종이를 받아 드신 E신부님, 한참을 들여다 보시더니, 『학생, 요기있는 요 네번째 글자가 c가 아니라 d자이며 여섯번째 글자는 s가 아니고 t자 이지 싶은데…』하시는 것이었다.
Y군이 호주머니에서 미리 적어온 쪽지를 살짝 꺼내서 보니「아뿔사」그렇게도 외웠건만 그만 두글자나 틀린게 아닌가. 물론 신부님께서 교정해 주시는 것이 당연히 맞았고.
『이건말이야, 「전통주의」라고 하는 말인데「뜨라디시오날리스무스」라고 읽지, 그건 그렇고 학생이 라틴어에 관심이 있다니 놀랍군, 그것도 신자가 아닌 사람이 말이야』하고 대견해 하시자『신부님, 라틴어 그거 제대로 공부 할라카면 우야머 되는데요? 』『신학교 가면되지!』『그라면 내 신학교 갈랍니더』『신자가 아닌 학생은 갈 수 없어』『신자가 되면 되지요 뭐』이래서 Y군은 오늘날 Y신부님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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