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국치일(國恥日)로 표현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지금 이 나라와 국민은 한없는 부끄러움과 허탈에 빠져있다.
노씨 스스로 비자금의 전모를 숨김없이 국민앞에 밝히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용서 받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한날 기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는 끝내 진실을 숨기고 참회하지 않음으로써 50년 헌정사에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노씨가 진실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것은 얼핏 보기에 비자금을 제공해준 기업인들과 또 그 돈을 받은 정치인들을 보호하기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뜻은 여러 형태로 국내외에 숨겨둔 수천억원의 도자금(盜資金)을 움켜쥐려는 수전노(守錢奴)적 심성과 위급할 때를 대비. 호신용으로 정치인들에게 뿌려놓은 비자금(秘資金)에 의지하려는 속셈 때문이다.
노씨가 입 다물고 있는 이 정치비자금을 놓고 여ㆍ야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가 상대방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죄목을 덮어 씌어 죽이려는 살벌한 외침만 들릴뿐, 스스로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끼고 물러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한명도 없다. 모두들 얼굴에 철판을 깔고 국민을 관객으로 비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미디언처럼 비친다.
분명히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파렴치한들이 있는가 하면, 「○묻은 개가 ○묻은 개나무란다」는 속담 같은 인간견공(人間犬公)들도 적지 않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들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이 나라와 국민을 국내외로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는 그들이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전직이든 현직이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이 사회에서 퇴진시켜야 마땅하다. 그들 스스로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그들을 쫓아내야한다. 또한 스스로 뉘우치지 않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지금 김영삼 대통령이 92년 수천억원의 대선자금을 노씨로부터 받았다는 설(說)을 놓고 여ㆍ야가 격돌하고 있다. 차제데 김영삼정부가 참으로 문민정부이고, 30년간 이어온 군부정권을 깨끗이 청산하려 한다면 먼저 자신의 정체(正體)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만일 자신의 출생이 항간의 풍문대로 수백ㆍ수천억의 도자금과 연루돼있다면 김대통령이 정직하게 지금 책임져야 한다. 이제는 진실을 털어 놓아야 할 때이다. 이를 미루면 제2의 노씨 비극이 재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노씨의 무패와 탈법을 방관하거나 고발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도 부끄러움을 함께 느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부끄러움을 느끼고 참회하며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다면 지금 당하는 수치와 아픔은 명약(名藥)이 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