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저녁 저는 우연히 중학생이었던 큰 아들의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집이 싫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 우리는 가족끼리 오붓하게 대화 한번 해본적 없고 항상 보고 듣는 것은 부모님의 싸움이고 우리 사남매는 불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이렇게 적어 놓은 걸 보고 저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적은 돈벌이로 남편 술값에 아이들 사남매 키우자니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못하는 것도 마음 아픈데 어린 것들 가슴에 그런 상처를 남겨 준 저 자신이 죽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호떡을 굽다가 리어커 앞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모두 다 행복한 모습들인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생각하면 내 모습은 더욱 초라해져 남들이 웃는 일을 보아도 저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산다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에 너무 힘이 들어 무엇엔가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신자 따라서 절에도 나가고 용하다는 점장이를 찾아 다니며 마음의 위로를 받아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돈많은 사람들을 부러워 하며 남편 복 없으면 돈복이라도 있어야지 하면서 …상이 고르지 못하다고 원망하며 살고 있을 때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던 천주교 신자였던 친구의 권유로 남편과 함께 예비자 교리반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성당에 나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했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판단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6개월 동안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교리공부 해서 학생이던 두 아들과 함께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수녀님께서는 남편에겐 비오, 저는 가밀라, 큰아들은 아사야, 작은 아들은 다니엘 이라고 세례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객지에 나가 있던 두 딸도 영세하여 가족이 모두 신자가 되었습니다.
1982년 12월 18일, 그 날의 감격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죄를 짓고 천박하게만 살아온 나에게 이런 특권이 주어지다니, 보잘것 없는 내가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성모님께서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신다니, 그동안 부모의 정을 모르고 살아온 저는 너무 감격하여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정이 구원받은 기쁨에 세상에 부러울게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아버지께 모두 말씀도 드리기전에 아버지는『가밀라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단다』하시며 나의 등을 두드려 주시고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난생 처음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고 살아온 날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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