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성서 사본(寫本)파편(破片)」을 번역한 듯한 「에스델서」의 제2경전 부분도 이번 기회에 불가타(Vulgata)본을 따라 재정비해 준다면, 다른 구약 성서 완역본을 갖지 못한 한국 가톨릭 평신자들에게는 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갖고 있는 셉투아진타(Septuaginta)본이나 불가타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판, 독일판, 프랑스판, 이탈리아판, 스페인판, 인도판 외에 심지어 헝가리어판, 힌디어판 등등이 모두 제2경전을 별도로 내세우지 않고 구약성서 안에 넣어 두고 있다.
물론 구약의 텍스트를 마소라 판(Masoretic Text in Hebraica)으로 결정한 이상 그 원본의 체재를 따를 수밖에 없었겠으나, 「가톨릭 용」이라는 표지가 불어 있는 이상 우리 교회 신자들에게 의혹(구약 성서와 별도로 제2경전이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의혹)이 없도록 편집하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주의 기도 끝 부분(마채오 6장13절)에서 원본에 없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을 삽입해 둔 것은 분명 개신교도를 위한 배려인데, 이 「가톨릭용」성서 전권을 통해 가톨릭신자를 위한 배려는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가 없음은 무척 섭섭한 일이다.
예컨대, 의미가 다르다 하겠지만 필립비서 1장1절의 「교회 지도자」와 보조자를 차라리 「주교」와 「부제」로 번역한다면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훨씬 친근감이 들지 않을까? 그런데 I 디모테오 3장1절에서는 「감독」이라고 번역하고 있어서 또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2백주년 신약 선서에서는 이들을 모두 「감독), 「봉사자)로 일관되게 번역하고 있다. )
가톨릭 신자들을 언짢게 하는 또 다른 표현들은 도처에 나오는 「외경」이라는 낱말이다. 예컨대 구약 7백22.7백55.7백59.7백60.7백63-5.1천4백64.1천4백82 쪽의 각주에서 우리의 제2경전을 외경(外經)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런 성서를 가톨릭 신자들이 20년 가까이 읽어 왔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또 룻기 1장 1절 각주의 「구교. 신교」라는 표현도 교쳐졌으면 좋겠고, 느헤미야 11장 10절의 각주에 나오는 「역대기상9: 10」을 나타내는 개신교식약어이므로 우리에게는 생소할 뿐이다. 어쨌든 새로운 개정판에서는 모두 고려되어야 할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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