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퇴마록(退魔錄)인가?
젊은이 문화의 전개에서 90년대는 모더니티의 체험이 생략된 포스트모던한 마디를 형성하고 있다. 광고카피로 말을 배웠고 전자오락으로 감각적 순발력을 키워온 이른바 신세대가 당당히 걸어 나와 거리를 누비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가상공간)에서 꿈꾸어 온 이들이 종교를 규정하는 시각은 전혀 새롭고 독특하다. 이들은 낯선 기호와 이미지를 엄청나게 유통시킴으로써 기성종교의 권위를 희석시킨다.
이 글은 최근 젊은 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PC통신 소설인 「퇴마록」을 대상 텍스트로 하여 신세대의 종교문화의 특성과 그 구조를 밝혀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은 신세대들의 종교적 욕망을 극적으로 해소시켜준 컴퓨터통신 소설이다.
하루아침에 신세대의 「성경」이 된 소설 「퇴마록」 앞에서 기성종교학자는 미아처럼 방황하는 이방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세대 간의 종교적 단절, 그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도피와 저항 사이에 선 세대
신세대의 무의식과 욕망의 배출구 역할을 극적으로 떠맡았던 PC통신소설 「퇴마록」을 분석하기에 앞서 「신세대」라는 단어의 등장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90년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신세대에 대한 담론이 증폭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신세대 역시 어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제쳐놓고 있다. 70년대 경제성장과 확대된 전자매체의 산물, 가난을 모르고 태어나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글자를 익혔으며 소비의 재미를 일찍이 익힌 이들은 정신없이 일하는 부모세대를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할 뿐이다. 신세대는 기성세대와 의도적으로 문화적 단절을 선언하고 싶어 하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만들어 가겠다고 한다. 부모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종교생활 또한 이들에게 또 하나의 정신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일학교의 교리시간이 학교생활이 연장이라는 불평을 늘어놓는 청소년들이 많다. 장소만 다를 뿐이지 종교과목이 하나 더 부가된 셈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주일학교는 「남녀공학」이라 조금은 매력적이고, 선생님들이 젊고 분위기가 자율적인 사실이외에 일반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
엄청난 외부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탈출구 찾기에 급급한 신세대는 위태롭기까지 하다. 새로움을 만들어가기에 그들은 너무 외롭고 힘이 없다. 손쉬운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어 하면서 갖가지 상실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시달리고 있다. 구세대의 눈에는 「재미로…‥」 사는 듯 하지만 사실상 이들에게는 참으로 힘겨운 삶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삶에 기성종교는 출구를 열어주지 못하고 있으며, 신세대는 가장 손쉽게 도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탄가스와 환각제를 선택한다. 좀더 「교활한」아이들은 「전자파로 조제된 마약」을 합법적으로 들이킨다. 컴퓨터의 시뮬레이션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다른 마약과는 달리 날이 새도 약기운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우혁의「퇴마록」은 바로 이러한 신세대의 도피적 시뮬레이션 게임법칙을 잘 헤아린 PC통신소설이다.
가상공간과 종교문화
「퇴마록」에서 보여지는 종교적 이미지는 상상(꿈)이다. 이 상상은 인류애를 향해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닌 단지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다. 악마의 덫에 빠진 인간과 그 인간을 구하는 4명의 퇴마사(박신부, 현암, 준후, 승희), 그리고 해피엔딩이라는 서사구조가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숱한 동화나 민담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이 서사틀이 이제 통속문화의 영역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퇴마록」이 억압적 현실에 대한 두려움에 지친 신세대에게, 그들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배출시킬 사이버스페이스(가상공간)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의 엔터키에 따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상공간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공간은 신세대의 시선을 이끈다. 「퇴마록」에서 그려지는 현실은 어지롭고, 기성종교는 무력하며,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이며, 사회제도나 관습은 악령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이다. 이러한 현실은 신세대가 느끼는 현실상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하겠다.
「퇴마록」은 기존의 어떤 대중소설도 시도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공간에 그 상상력의 기반을 두고 있다. 신세대는「퇴마록」을 보며 유년시절에 읽었던 동화의 세계로 다시금 빠져 든다. 그 세계는 선이 항상 악을 이기는 공간이다. 「퇴마해위」는 험난한 고난이나, 동시에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권선징악」이라는 공식은 탄탄한 지대 안에 고정되며 해피엔딩은 당연한 보상물로 주어지게 된다. 신세대는「퇴마록」을 읽으며 현실에서 달아나 그들이 희구하는 유토피아로 날아간다. 컴퓨터는 현실과 유토피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컴퓨터피아는 새로운 종교적 경험이다. 컴퓨터의 세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며, 이 상상계 안에서 「나」는 절대적인 주체로 모든 상상을 가능케 할 힘을 지닌다. 컴퓨터의 세계 안에서 현실은 가상현실로 대체되며, 나는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모든 꿈같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컴퓨터의 네모난 모니터가 내뿜는 마법 앞에서 냉엄한 현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신세대의 현실 인식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상상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늪에 빠진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무기력한 「손끝의 몸짓」, 이것이 1995년 우리 신세대의 종교적 욕망과 무의식이 그려내는 가로축과 세로축이며, 그 좌표는 상상이라는 미혹 안에 불안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성종교는 이 당혹스러운 상상계의 미혹에서 신세대를 탈출시켜야 할 지상과제에 직면해 있다. 상상계의 공식을 과연 어떤 식으로 현실 안에서 풀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이 억압적인 강령주의의 기조에서 주어진다면 신세대는 현실에서 달아나 점점 더 멀리 환타지의 세계로 숨어들어갈 것이다. 「퇴마록」은 그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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