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자선주일을 맞았다. 매년 맞는 자선주일이지만 올해의 자선주일은 유난히 썰렁하다고 교회 복지시설 관계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맞는 자선주일이 따뜻할리야 없지만 한 해를 마감하는 이맘때쯤이면 한 해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이 그래도 넘치는 맛이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그 넘치는 따뜻함이 택도 없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비단 교회 시설만 썰렁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매스컴들은 대부분의 복지 시설들이 유난히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할 입장에 처해있다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몇년 사이 불우 시설들이 느끼는 썰렁함의 강도가 계속 높아가고 있는 추세이긴 했다. 그러나 올해의 추위는 또 다른 비중과 무게를 가지고 복지 시설들의 마음을 시리게 하고 있는것 같다.
최근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검은돈의 액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수천억에서 시작한 그 액수는 현재 「조」라는 단위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 사람들로서야 가늠하기 어려운이 엄청난 돈들은 바로 한사람, 아니 단 몇사람들의 주머니속에서 나누어진 돈이라는 것이다. 이게 어디 상상조차 가능한 일인가?
10년세월이 넘도록 개인 호주머니에서 처리된 돈의 액수가 그것도 밝혀진 것만 이와 같다면 우리 나라가 넘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떻게 살아나 왔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건재하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 이유는 멀지 있지 않다.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정답이다. 아직 깨끗하고 정직한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나라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자선주일, 복지시설들의 유난히 시린마음은 바로 이번 검은돈 파동으로 정직하고 깨끗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얼어 붙었기 때문에 그 여파가 수많은 복지시설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복지시설들이 돈이 넘쳐나는 대기업들의 자선에 의해 살아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사랑」으로 살아나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권력과 결탁, 특혜를 누려온 대기업들의 자선은 그 동안 『별 볼일이 없었다』는 사실과 맥이 통하는 얘기가 된다. 그것은 또 기업의 이윤을 사회와 공유해야 하는 경제정의의 법칙이 그동안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사회와 이윤을 공동하기는커녕 최고 권력자의 탐욕과 그 주머니를 채워주는 대가로 온갖 특혜를 받아왔고 그것으로 기업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유수의 대기업들이 개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일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자선에 마음을 써왔다면 우리의 복지사회 구현은 훨씬 앞당겨 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가능했을 얘기다. 물론 개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일과 더불어 자선이라는 주머니를 채우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쏟아온 대기업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동안 우리사회의 자선은 진짜 「보통 사람들」의 작은 마음으로 실현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선이 엄청난 돈과 엄청난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실현할 수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려움속에도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많은 복지시설들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이어져 가는 있음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우리 교회의 자선주일은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이 평범한 자선을 생활속에 구현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하고 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제로 살고 또 그것을 사회 속에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제로 살고있다면 오늘 이 자선주일에 복지 시설들이, 어려운 이웃들이, 추위에 떨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자선은 결코 거창한 일도, 하기 힘든 작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선은 그저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형제들에게 우리의 손을 내어주고 목마른 이에게 우리의 물을 나누어 주며 병들고 굶주린 이웃들과 우리의 몫을 함께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허하기만한 오늘 우리의 현실속에서 보잘것없이 퇴색한 사랑의 마음을 되찾아 불을 지피는 일은 바로 교회의 몫이다. 정직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따뜻하고 정겨운 마음으로 자신의 몫을 이웃과 나누도록 교회는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네것과 내것을 유난히 구별하고 형제적 사랑과 나눔에 인색」한 교회가 자선을 말하기는 어렵다. 자선은 말로써가 아니라 삶으로써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선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우리의 형제를 찾는 일」임을 교회는 삶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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