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예수 성탄을 맞았다. 백화점과 거리의 상점들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형형색색으로 장식된 상탄절의 축제분위기를 돋구어 주고 있다. 어느새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이제 엿새 후면 새해가 시작되는 송구영신의 시절에서 또다시 성탄절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성탄절은 메시아의 오심이 우리의 절실한 현실문제로 와 닿는 느낌이다. 성탄절의 의미가 더욱 새로와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 어느해 보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때에 맞는 성탄절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제적으로 보면 지난 한해는 기아와 폭력이 그 어느해보다 심했던 한해였다. 국가주의가 해체되고 민족주의가 출연하면서 민족말살을 위한 엄청나고도 무자비한 살육이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지구가 갖고 있는 식량을 세계의 모든 사람이 먹고도 남는데도 지구촌 한편에서는 기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평화를 위한 국제회의가 빈번하게 개최되었지만 자국의 이익과 권위만을 내세우고 추구하는 실효없는 회의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올해는 어느해 보다 지진과 홍수와 폭풍과 같은 천재지변이 많았던 한해였다.
우리 피부에 직접 와닿는 국내사정은 더욱 더 혼란스러웠다. 천재가 아닌 인재로 말미암은 엄청난 사건 사고가 유별나게 많았던 한해였다.
인간의 이기주의와 무분별한 탐욕으로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이 땅의 환경이 심하게 오염되었고 파괴되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바람에 기가막혀 한숨만 쉬며 정신을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새해로 접어 들면서 서울 아현동에 이어 대구ㆍ상인동에서 가스폭발사건이 터져 어린학생들과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갔던 것이다. 여기에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려 앉았다는 소식으로 또 한번 온 국민이 아연실색 통탄하면서 매몰된 이들의 수색작업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2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재판받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비탄에 젖어 있는 형편이다. 권력과 재벌이 야합하여 벌인 초대형 부정축재를 말할 수 없는 허탈감 속에 지켜본 한해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탄의 참된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의 성탄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절망에 빠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은 오늘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맞는 성탄을 각별한 심정으로 경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절망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실존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와는 거리가 먼 지나간 날의 사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예수성탄의 은혜는 오늘도 계속된다. 당신 말씀의 육화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은 오늘도 우리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준다. 그러나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에도 하느님이 천상세계에 군림하면서 인간이 범하는 선행과 악행을 낱낱이 헤아려보고 계시므로, 인간이 죽어서 심판받으러 그 대전에 나아갈 때에 생정의 행위를 근거로 심판을 내리실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은 저 천상어좌에 고고하하게 군림하면서 사태를 관찰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다. 이 하느님은 불행을 초래하는 인간들의 불행한 처지에로 친히 개입하여 자신을 희생시켜 선(善)으로 변모케 하시는 하느님인 것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인은「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즉 임마누엘(Emmanuel)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성탄을 큰 축일로 경축하며 지내는 까닭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람이 그러한 선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구원될 수 없는 인간의 비참한 처지를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신 까닭이다. 이처럼 성탄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선물에 대해 감사드리는 시기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성탄은 어떠한지 한번 돌아 보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저하던 니꼴라오성인과 달리 산타클로스를 그저 상업적인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책임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떠 이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는 않는지 다시금 되돌아보아야겠다.
우리는 저 가난하고 초라하고 작디작은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처럼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답답한 이 당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성탄의 신비를 믿는 우리는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땅에 희망과 평화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성탄전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다시 태어남을 기념하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그분의 은총을 받으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깊은 관심과 우리에게 보이신 깊은 관심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대대로 전해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