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경험 전해주는 멘토
언젠가부터 우리들 사이에 멘토와 멘토링이란 말이 부쩍 유행처럼 오르내리고 있다. 멘토(mentor)는 본래 그리스 신화인 오디세이(odysseus)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다. 기원전 1200년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오디세이 왕이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별리마커스를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멘토’에게 맡기고 떠났다. 오디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멘토는 왕자의 친구이자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왕자를 돌보아 주었다. 여기서 유래된 멘토라는 용어는 지혜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기업에서는 경험 많은 연장자가 연하의 동료나 신입사원에게 자신이 터득했던 지혜와 경험을 전해주는 선배로서 통용된다. 기업조직에서 멘토는 멘티(mentee)에게 역할모델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전적 직무부여, 상담 및 조직에 대한 지식제공 등을 통해 멘티의 대인관계 개발과 경력관리에 도움을 주는 자로 이해된다. 이러한 멘토링 시스템(mentoring system)이 현대 기업체의 교육훈련 및 조직몰입전략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초급직원을 경험이 많은 선배직원과 연계시켜주고, 선배직원으로 하여금 후배직원을 양성하는 책임을 부과해 주는 방법이다.
신앙의 전수 위해서
우리 교회에는 오랜 전통에서부터 이 멘토링 시스템이 있어왔다. 신앙의 전수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정 공동체 안에서부터라는 의미로 자녀들에게 신앙이 전해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갓 태어난 유아들의 세례는 당연히 부모의 신앙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또 그 부모들의 신앙전수를 의무화하고 있고, 그 부모도 부족할 수 있어 대부모까지 세워서 영세자의 신앙을 돕도록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신앙의 모범이 되는 성인 성녀들의 이름을 붙여 그 성인 성녀들의 신앙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세례명을 정하도록 하면서 개별적인 성인 성녀의 신앙을 닮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시스템화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 시스템이 점차 형식화되어 가고 있고, 또 심하게는 전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로 무너져 내렸다는 점이다.
매년 9월이 되면 우리는 한국천주교회의 자랑스런 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자성월을 지낸다. 일찍이 초대교회 때 교부 떼르뚤리아누스는 “순교는 제2의 세례요,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다”라고 말했듯이, 한국 천주교회 역시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수많은 순교자들의 희생과 순교의 피를 흘렸다. 그분들 가운데서 기록에 남겨진 순교자들의 일부가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이름 하여 103위 순교자들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 103위 순교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 103위 성인 모두를 기억하고 있는 이는 지극히 드문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바오로 외에는 거의 대부분이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언젠가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우리 한국천주교회 순교 성인들의 이름을 말해 보라고 했더니, 그들 가운데서 놀라운 답변이 나왔다. “백 삼위요!” 혹시 그 아이는 ‘백’씨 성을 가진 ‘삼위’라는 이름의 순교자가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 우리 아이들만의 이야기일까.
새롭게 추가 조사 연구되어 하느님의 종 125위를 교황청에 시복시성토록 청원을 올린 상태다. 그러나 그분들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알고 또 마음에 새기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반면에 얼마 전에 아프리카 가난한 지역에서 선교와 의료봉사에 힘쓰다가 안타깝게도 일찍 암으로 투병하여 끝내 선종하고만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그로인해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외방 선교에 지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신앙의 전수를 위한 여러가지 방법과 표현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멘토와 멘토링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던 우리 교회였지만, 오히려 프로테스탄트에서 ‘1대1 제자교육’ 프로그램으로 접목 발전시킨 것을 본다면, 우리도 무엇인가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신앙의 표현이 필요함이 틀림 없다. 우리 시대 신앙의 모범으로서의 멘토는 과연 누구이며 또한 어떻게 그 멘토들을 신자들에게 세워줄 수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할 때다. 그래서 풍부한 신앙의 전수 내용과 자료들이 새로운 멘토링 시스템의 개발을 통해 보다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으로 그 성과가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하겠다. ‘새로운 복음화’는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것일 게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