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그해 마지막 날 을씨년스럽게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서울구치소 후문께서 서성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전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사형 집행으로 주검이 돼 높은 담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쪽문으로 빠져나오던 사형수들의 관, 그리고 그를 둘러싼 격정과 흐느낌 등은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는 원체험이 됐다.
우리나라는 1997년 23명의 사형수를 형장의 이슬로 보낸 후 15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지난 6월 초 전직 법무성 장관 2명을 포함한 14명의 법조인을 우리나라에 파견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배경 등을 연구하고 돌아갈 정도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권국가 반열에 올라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초등생 성폭행사건 등 반인륜적 흉악범죄가 생길 때마다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불처럼 일어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죄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사형이라는 극형을 포함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흉악범죄가 줄어들까? 전 세계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형벌을 강화하다가는 사형만이 유일한 벌로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범죄를 인간 사회가 존속하는 한 생길 수밖에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만은 피해자가 되지 않길 바라는 확률게임을 할 게 아니라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교회는 생명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며, 그래서 그 누구도 함부로 생명을 침해할 권리가 없음을 가르쳐오고 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런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상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놓는다. ‘오해는 악을 낳는다’고 했다. 모든 이를 위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오해한 결과다. 오히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는 주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의 오해가 어떤 악을 낳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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