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히도 나는 청소년기에 펜촉이나 잉크와 조우하지 못했다. 십대시절의 나에게 펜촉과 잉크는 삼촌들의 연애담에나 등장하는 고풍스런 소재에 지나지 않닸다.
우리 세대는 주로 수성펜을 사용했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것을 적어나가야 했고 그러기엔 수성펜만한 게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컴퓨터 자판이 그 자릴 꿰찼다. 속도 내기에 그만한 게 또 있으랴. 그랬던 나에게 잉크와 펜촉이란 벗이 생겼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나는 가까운 지인에게서 책상 하나를 물려받았다. 낯선 거리를 탐험하듯 책상 서랍을 뒤적이면 어느 날, 펜촉은 내 손가락을 찌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그 첫인상이 너무나 따갑고 예리하여 나는 펜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또 다른 서랍에서 잉크병을 찾았들 때의 감격이란! 저녁내 씨름을 한 끝에 잉크는 내게 제 속내를 열어 보였다. 오래 묵은 잉크의 향은 천일야화에 버금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쏟아내는 듯했다. 잉크를 머금은 펜촉이 연습장과 마찰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버지니아 울프를 수억했고 박경리를 추억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추억하는 일, 잉크의 펜촉은 그 모순된 일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가슴에 붕대를 감고서 새벽 내 글을 썼을 젊은 박경리와, 천재성과 공기를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고 홀로 글만 쓰고 있었을 버지니아 울프 그녀들이 보냈을 숱한 불면의 새벽에도 펜촉은 이렇듯 종이와 마찰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컴퓨터화면보다 연습장의 여백과 더 자주 벗한다. 깜빡이는 커서 대신 잉크향을 피워놓고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마음은 꽤나 느긋하다. 펜촉과 잉크 새로 사귄 벗들 덕에 이십대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는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느 날 돌연 내 손끝을 찔러 「느림」을 선물하시고, 사모하는 작가들을 추억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