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이원규 시인의 시 구절이 아니어도 툭 하면 생때같은 목숨을 한낱 종잇장도 아닌 양 여기는 뉴스가 이제는 빅뉴스도 아니다.
시인은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고 시의 전문을 마치지만, 어찌 보면 사는 일이 당최 견딜 수 없을 때는 지리산에 꼭 오시라는 당부의 말이다. 언제든 지리산 열린 문으로 걸어와 천왕봉의 장엄한 일출을 보고, 노고단 구름바다 속에서 피어나는 원추리 꽃에 마음을 두며, 피아골의 단풍과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 속에 거닐다가,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걸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굳이 지리산이 아니어도 눈길 두는 대로 구절초, 개미취 등의 가을꽃이 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 곁에 꽃을 두셨을까.
예쁘기만 한 꽃이 아니다. 한 송이 꺾을 요량으로 줄기를 비틀어봐라. 쉽사리 꺾일 것 같던 가늘고 긴 대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생살을 드러내게 꺾어 버린 지난 태풍에 휘어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토록 말간 얼굴로 피어난 가을꽃들이다.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꺾였을 저 꽃들은 흔들린 만큼 뿌리를 깊이 내리고 억척같은 생을 꾸려갔던 것이다.
예쁘다는 찬사만으로는 부족한 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시어 희망과 끈기의 복음을 꽃으로 전하신다. 꽃들이 전하는 생명의 복음을 눈치 채지 못하는 아둔한 이들에게는 시인을 내세우신 하느님이다. 시인은 죽을 각오로 자연을 생명으로 사랑한다.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는 꽃을 볼 일이다. 세찬 강풍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유약한 생을 포기했으리라 단정 지었던 꽃이었다. 그런데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살아낸 것이다. 억척같이 살아낸 가을꽃은 향기뿐만 아니라 생명을 희망으로 건넨다. 이제 울지 말고 꽃을 보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