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방법으로 의사 표현하는 시대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해졌다. 예전에 예수님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로써 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오늘날은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또 다양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노래와 시와 그림 등의 아주 다양한 표현과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손짓 발짓으로도 그리고 온몸으로 하는 춤으로도 얼마든지 생각과 뜻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 틀림없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에도, 그 복음을 이제는 말로써만 전한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더 이상 말이 전부일 수 없고 말로써만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에 맞지 않는 잘못된 방법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림 하나 없는, 지루한 글로만 씌어진 책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실제로 말로만 전하는 선교활동에서 더 이상의 큰 효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냥 쉽게 말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값싼(?)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니, 선교의 결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 시대에는 글을 배우면서, 동시에 삶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유교경전인 사서삼경을 배울 때에는, 그 글을 읽고 배우면서 동시에 글 속에 담긴 내용을 마음과 행동 속에 그대로 옮겨 담을 수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에 중국으로부터 소위 서학 서적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천주교 서적도 함께 들어오면서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선교사 없이도 그 전해 받은 서적을 통해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도 서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우리 문화권에서 나름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요즘엔 서적을 통해서 인생을 바꾸는 일은 예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든 듯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책 외에 워낙 많은 다양한 매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자혁명과 함께 실로 다양한 매체들이 사람들의 생각과 뜻을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이 책으로써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분명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정말로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지식과 정보가 교환되는 시대다. 신문, 방송, 공연, 축제 등의 아주 다른 방식의 표현으로 서로의 생각과 뜻을 전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소위 정보의 바다로 불리는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그 전달 방법은 무한대가 되었다. 아니 이제 오히려 무한 정보의 홍수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더 이상 참 정보와 거짓 정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혼돈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래서 쉽게 남의 말과 글에 신뢰를 두지 못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로 인해 감동을 받는다거나 인생의 변화가 생기는 일은 상대적으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서로가 서로에게 말과 글로써 감동을 받고 또 인생을 변화케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행동으로 사람들 감동시켜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말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글 역시도 사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문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와 같은 말과 글에 감동받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이 ‘공자 왈 맹자 왈’ 해 봤자 말하는 이의 행동과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도 그 말에 감동받고 공감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 아시아주교회의에서 일본 주교단의 연구 발표 중에, “극동 아시아(일본과 한국)의 문화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해 듣고 감동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오직 행동과 실천적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아 변화되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연구가 보고된 적이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매스컴을 통해 전달되었을 때, 그것은 소설이나 꾸며진 영화가 아니라 엄연한 다큐멘터리 사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과거 김수환 추기경이 성탄절에 철거민 지역과 난지도 쓰레기장에서 미사를 봉헌하시고, 부활절에 매매춘 여성들과 그리고 교도소 수인들과 함께 지내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동을 받고 추기경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예수님과 닮은 모습이었기에 사람들은 천주교에 대한 근본의 신뢰를 쏟았고 그래서 스스로 교회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의 열쇠가 아닐까 싶다.
홍근표 신부는 1988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 부국장(노인사목담당) 겸 종로본당 주임신부로 봉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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