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천사를 만나다
직장 상사에게 왕창 깨진 남 과장은 소주잔을 노려보며 생각합니다.
… 제기랄 세상 더러워서 못살겠네. 콱, 그냥 사고 한번 치고 말아! …
한참을 노려보던 소주잔을 입에 대고 벌컥 마셔버립니다. 목이 싸하고 속이 울렁 하며 취기가 확 올라옵니다. 다시 소주병을 잡고 술잔을 채우려는데, 낯선 사내가 앞자리에 앉으며 술병을 빼앗듯 채가더니 입에 대고 꿀꺽꿀꺽 마셔댑니다. 남 과장이 놀라서 쳐다보자 입에 댔던 술병을 기울여 남 과장 잔에 술을 부으며 말합니다.
“남요한씨, 남 과장님. 세상 살기가 만만치 않지요? 왜 사고라도 한번 치실려고요!”
남 과장은 얼떨결에 소주잔을 잡으며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아, 어, 저, 꼭 뭐 사고라기보다는, 제 할 말을… 할 말 좀 하고 살자. 뭐 그런 뜻에서….”
이야기를 하던 남 과장은 ‘내가 이게 무슨 꼴인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앞에서 횡설수설이라니’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주를 단숨에 들이 켠 후 술잔을 쾅 소리가 나도록 탁자에 내려 놓으며 소리쳤습니다.
“당신!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또… 어, 그래 내 생각을 왜 함부로 알고 그러는 거야!”
호기 있게 소리는 쳤지만 소심한 남 과장은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앞에 앉은 낯선 이가 싱긋이 웃으며 “반갑소, 난 천사 ‘라파엘’이오”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 과장은 내민 손을 잡고 피식 웃으며 ‘천사? 천사! 맛이 약간 갔구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 과장은 마음도 울적한데 농담이라도 맞장구쳐주자 싶어서,
“라파엘 천사님. 날개는 어디다 저당 잡히시고, 오실 때는 날아오지 않고 버스 타고 오셨나요?”
남 과장은 비아냥대듯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습니다. 라파엘은 예상했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이상한 가루를 끄집어내서 순식간에 남 과장 눈에 비비며 말했습니다.
“자, 말린 달빛 가룹니다. 눈에 비비면 세상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순간 남 과장은 세상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서서히 빛이 가라앉는데 앞에 앉은 라파엘의 어깨에 하얗고 큼직한 날개가 빛났습니다. 너무 놀란 남 과장이 주위를 둘러보자, 술을 마시며 떠들어대는 손님들 모두 어깨에 날개가 있습니다. 작거나 크거나, 검거나 희거나. 남 과장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라파엘 천사의 날개는 여전히 반짝거렸습니다. 얼이 빠져 있는 남 과장에게 라파엘 천사가 말했습니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명령으로, 납탈리 지파 아시엘의 후손 토빗의 아들 토비야를 이끌던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시도 인간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인간들 곁에 머물며 하느님의 뜻대로 너희들을 도우고 있었다. 오늘 남요한 너의 힘든 모습을 보면서, 평소 네가 쌓았던 선행을 생각하여 내가 너를 도우러 왔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깨달음
남요한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소 ‘하느님이 계시는가?’ 의심하며, 사랑을 실천하되 하느님 사랑에 대한 보답이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마음보다는 인간적인 동정심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남요한은 참회의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이 모든 마음을 알고 있는 라파엘은 요한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였습니다.
“형제여 괜찮네, 시작은 인간적인 동정심에 불과했지만, 이제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바뀌었으니 괜찮네.”
요한은 조용히 눈을 감고 라파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요한, 아무리 힘들어도 악한 마음을 품지 말게나, 네 안에 있는 본시 선한 마음, 인간을 신뢰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지 말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게나. 모두 자신의 날개를 지니고 있다네. 그러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더럽게 물들이기도 하고, 타락하여 날개를 아예 꺾어 버리기도 한다네. 더 나쁜 짓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의 날개마저 꺾어 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일세. 자네는 아직 하얗고 아름다운 큰 날개를 가지고 있다네. 언젠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날, 자네의 그 큰 날개를 활짝 펴고 주님께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를 잘 키우게. 누구든 자신의 날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선행과 기도로써 크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네.”
라파엘은 말이 끝나자 아무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남 과장, 남요한의 가슴에는 어느덧 자라나는 날개에 대한 기쁨으로 뿌듯하여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천사와 소주 한잔 해보시겠습니까?
백남해 신부는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과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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