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한 사람의 이야기다. 7남매의 아버지인 그는 명예로운 직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도 못했고 살갑고 친근한 태도로 자녀들과 어울려주지도 못했다. 그런 그가 생을 마감하고 하늘나라에 갔다. 역시 딱히 남아있는 유산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을 찾은 한 사제가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발견했다. 특별할 것 없던 그의 장례미사에서 그의 아내와 자녀, 며느리, 손주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체를 모셨던 것이다. 냉담교우가 없었기에 미사 전 고해성사도 필요치 않았다. 그 사제는 수많은 장례미사를 드려왔지만 이런 장례미사는 처음 드렸다고 고백했다.
신앙인은 죽어서 신앙의 유산을 남긴다. 일본 나가사키의 가쿠레키리시탄들도 그랬다. 비록 바른 기도문과 예식은 아니었지만, 사제도 없는 박해의 땅에서 250년 동안 후손에게 신앙을 전했다. 또 신앙의 자유를 얻은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피나는 노력으로 성당을 남겼다. 그 신앙의 유산은 신자들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감화를 주는 위대한 유산이었고 지금 그들은 그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하려는 이유는 선조들의 노력과 맥을 함께한다. 남기기 위해서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목숨까지 내놨다. 그렇게 자녀에서 자녀에게로 남겨온 유산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선택권을 준다며 유아세례를 피하는 부모, 학업·취업 앞에 자녀의 신앙생활을 뒷전으로 하는 부모, 자녀를 성당에 보낸 것만으로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는 부모. 혹시 이런 모습은 아닐까?
11월은 위령성월이다. 돌아가신 선조들을 기억하며 그분들께 받은 신앙의 유산을 우리는 잘 남기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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