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암기에는 약한 편이기도 하지만, 건망증 또한 추종을 불허하는지라 가끔은 참 “내가 왜 이렇게 살지?”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이다. 정말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생활이 불편할 정도인 경우가 꽤 된다.
우선 집안에 두고 있는 온갖 잡화들을 보면, 어떤 날에는 우산이 대여섯개가 축축하게 놓여 있기도 한데, 정작 비가 오는 날 외출을 할라치면 그 많던 우산이 하나도 없다. 밖에서 어디선가 우산을 얻어 쓰고 와서는 집에 쌓는다. 하지만 비가 와서 들고 나가면 어디엔가 두고 온다.
대개 치킨을 배달시키면 쿠폰이 따라온다. 그런데 항상 세 개 이상이 쌓이지 않는다. 받은 쿠폰을 한데 정리하지 않고 방 안 이곳 저곳에 붙여 두거나 한쪽 구석으로 치워뒀다가는 잊어버린다. 급한 일이 생겨 번쩍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 다음 신호음이 가서 “여보세요”하는 응답음이 오면…“누구지?” 생각이 안 난다. 황급히 전화를 끊고, 메모를 다시 확인한다.
취재수첩은 항상 다섯 권 정도를 동시에 사용한다. 집에서 들고 나오기도 하고, 사무실 책상에서 꺼내기도 하고, 가끔은 커피 머신 옆에 사나흘씩 뒀다가 들고 가기도 한다. 중요한 메모를 찾으려면 여기저기 흩어진 수첩들을 모아서 뒤적거린다. 한 번은 왼손에 지갑을 들고, 오른손으로 바꿔 들어가면서, 서랍과 주머니를 이잡듯 뒤지기도 했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에게는 메모하는 습관도 그리 용이하지 않다. 메모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거나, 어디에 메모를 했는지, 메모를 했는지 안했는지조차 기억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서 요긴하게 써 먹을건가.
건망증의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라는데, 성격상 별반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데,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하기야, 애 낳고 키우다가 백화점에서 애 기저귀 갈아준 다음, 애는 두고 가방만 챙겨 나왔다는 어떤 아기 엄마 이야기에서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어쨌든 별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총명해지는 ‘총명탕’이라도 섭생을 해야 할지….
건망증의 이유 중 또 다른 하나가 집중도의 차이라는 주장도 꽤 일리는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건망증이 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아하니까 한 눈에 혹하고 항상 즐겨 생각하니까 집중도가 높고, 그러다 보니까 기억도 잘 된다는, 뭐 그런 정도의 주장인데,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아닌 듯 싶다.
한참 당구를 배울 때, 서점에서 당구 이론서를 한 번 정도 죽 훑어보기만 하면, 잠자리에 들어서도 천장을 칠판 삼아 책에 나온 각종 이론들이 동영상으로 펼쳐진다. 또 국민 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에 정신 못 차릴 때에는, 각 종족의 특성이나 상황별 전략 전술을 줄줄이 꿰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야구나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던 필자는 유럽의 각 축구구단 감독과 선수들을 줄줄 외우는 친구들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프로야구 선수들의 할푼리까지 정확하게 꿰는 후배들에 경탄한다. 그리 보면, 집중하는 만큼 기억한다는 이론이 꽤 맞는 듯하다.
작심삼일의 폐해나, 초심을 지키라는 권고나 모두 어쩌면 같은 이론이 적용될 듯하다. 처음의 결심에 집중도를 유지한다면, 작심삼일은 극복할 것이고, 순수하게 처음 가졌던 열정과 동기를 지켜나가는데 집중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느슨해지고, 마치 하느님이 곁에 없다고 쳐도 세상이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세례 받을 때의 느낌과 결심을 상기해 볼 일이다. 너무 자주 많은 것을 잊고 사는 우리이긴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몇 가지 목록에 신앙 입문의 초심을 포함시킨다면 신앙의 건망증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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