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선종하신 외할머니는 생전에 가톨릭 성가 ‘주님은 나의 목자’를 무척 좋아하셨다. 돌아가시기 임박해서도 늘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셨다. 죽은 영혼들을 기억하고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위령성월을 보내며 아흔 가까운 삶을 살다 하느님 품에 안기신 외할머니가 그립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것도 아쉽지 않네 푸른 풀밭 시냇가에 쉬게하~사 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네/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바른 지름길로 인도하시고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해~도 주님 계~시니 두렵지 않네/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의 한~평생 축복하시고 선하심과 자비하신 은총으~로 주님 궁~에서 살으오리다.”
마치 당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더 기뻐하시던 외할머니. 임종 직전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마음의 평안함을 잃지 않으셨던 그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죽음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막을 수 없고, 말릴 수도 없으며, 회피할 수도 없다.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은 부인할 수 없는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제한된 순간을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순간을 살지만 영원한 시간 안에 살며, 영원한 존재이나 순간을 살아야 하는 한없이 약한 존재.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후의 부활을 믿기에 영원한 생명을 사는 존재이다.
신앙인들은 하느님 자녀로서 죽음을 슬픈 게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일생 동안 죄에 대해 고뇌하고, 회개하고 기도했던 것이 모두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가 죽음이다. 죽음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마지막 문이며, 이 문만 열면 그토록 바라던 하느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그건 슬픈 게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다. 돌아가신 필자의 외할머니도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임종을 맞으셨던 것이다.
죽음은 모든 존재에 대한 평등한 권리이자 심판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정상적인 몸으로 태어났든 장애인으로 태어났든, 그 무엇이든 결국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느냐 문제이지 죽는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주어진 평등한 순간이다. 다만 하느님께서 주신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며 일생을 다할 때까지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못 살고는 각자에게 달렸다.
우린 하느님 자녀로서 죽음을 슬픈 순간으로 인식하기보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천국으로 가길 바란다면서 죽음을 부정한다면 모순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는 게 힘들다고 자살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자녀들에게 사는 동안 감당해야 할 역할과 사명을 주셨다. 신앙인들은 현실세계에서 죄악과 부딪히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투쟁이 끝나고 죽음 이후엔 하느님의 위로와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우린 충실한 하느님 자녀로 살아야 하며, 죽음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이나 죽음의 고통보다 주님과 만남을 더 바라고 기뻐하셨던 외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것도 두렵고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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