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 아들
- “관리인과 상담해 알아서 처분하세요. 대금은 송금하겠습니다.”
- 폐기물과 남겨둘 것을 분별하던 중, 벽장 구석에서 발견된 ‘낡은 상자’! 그 안에 어릴 적 엄마 등에 업혀서 찍은 한 장의 사진, 그리고 빛바랜 성적표와 문집들
-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전화로 다시 물어본다.
- “보내드릴까요?” “필요 없습니다.” 결국 폐기물로 처리된다.
의뢰인 - 집주인
- “신문이 쌓여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텔레비전 소리가 방에서 들렸기 때문에 ‘아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
- 방안은 텔레비전을 켜 놓은 상태. 토스터에 굽던 식빵이 남아 있었다.
- 갑작스레 맞은 죽음.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자신의 죽음을 냄새로 알렸다.
2010년 연초 일본 NHK 방송에서 내보낸 ‘무연사회 : ‘무연사’ 3만2천 명의 충격’이라는 스페셜 프로그램을 보고 일본 사회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죽음을 맞고 별다른 장례도 치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는 ‘무연사’ 사례들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연고 없는 죽음 연 3만2천 명, 장례 없는 화장(직장) 풍습의 확산, 스스로 사후를 대비하는 임종 노트 유행, 유품정리업체 등 가족대체 서비스의 등장….
유연사회에서 무연사회로 변화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현대인의 청사진, 무연사회(無緣社會), 그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막연한 공포감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연사회란 인간관계가 희박해짐에 따라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한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 인사조차도 나누지 않는 사회가 바로 무연사회다.
한국이 고도 경제성장기를 맞았던 30~40년 전, 모두들 시골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이동한 것은 분명 ‘유연사회로부터의 대 탈출극’이었다. 한국사회가 현대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한 도시화로 변모되며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는 무너졌고 급속하게 핵가족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대가족 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켜지던 노부모 부양문제가 현대사회의 노인 소외문제로 바뀌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동체 기반이 흔들린 고령화 사회에서 홀로 살다 홀로 죽어가는 ‘무연사’, 또는 ‘고독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환경에서 지독히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고 수많은 비정규 고용 형태의 삶이 늘어나고, ‘평생 싱글족’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젊은이들 또한 앞으로 노년을 맞을 때, 우리 사회의 고독감은 오늘에 비할 수 없이 극대화될 것이다.
서구적 개인주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과 함께 급속한 디지털 문화가 확산되는 환경 속에서 유연관계의 체험이 부족한 다음 세대는 점차 사회의 변화 속에서 소위 공동체성을 빠르게 잃어 버렸다. 더욱이 사회 불황과 맞물리면서 청년 실업이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에는 결혼 적령기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결혼은 기약할 수 없을 하나의 선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급기야 독신을 선언하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것은 어쩌면 ‘무연사’의 예비사단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대부분의 답은 이럴 것이다. “다른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자유를 누리는 삶.”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무연사회는 고독하지만 자유가 있고, 유연사회는 외롭지는 않지만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사회는 지금 확실하게 유연시대에서 무연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연사회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받아들여할 흐름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누구나 최후의 순간, 홀로 죽는 존재이기에 더욱 그렇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어떤 종교든 죽음은 중요한 주제이고 또한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와 긍정의 방식을 제시한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죽음을 넘어 천국으로 가는 길, 즉 부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 안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할지라도 무연사의 죽음은 교회가 가르치는 가르침과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무연사’는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줄여야 할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의 천국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부터의 하늘나라’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죽은 이들을 위한 연도도 중요하지만,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일과 위급한 환자들의 임종을 돕는 교회의 노력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홍근표 신부는 1988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 부국장(노인사목담당) 겸 종로본당 주임신부로 봉직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