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딸내미와 쇼핑을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파 커피숍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딸내미 스마트폰이 울렸다. “네. 제 전화번호인데요.” “전 안했는데요.”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딸내미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전 안했다니까요.”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라 내가 전화기를 빼앗다시피했다. 전화 속 목소리는 걸걸한 남자로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 이 학생 말귀를 못 알아 듣네. 학생 전화번호가 우리 어머니 전화번호였는데, 학생이 내 스마트 폰에 자꾸 친구로 뜨니까 지우라니까.” 세상에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 딸내미한테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저 아저씨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는데요. 스마트폰으로 바꾸셨나본데, 제 딸내미 핸드폰이 아니라 아저씨 스마트폰에서 전화번호를 삭제하세요. 그러면 카000에서 친구로 안 뜹니다. 아시겠어요.” “아, 그런가요.” 뚝. 고맙다는 소리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황당한 상황이었다.
나는 이 일을 두고 ‘핸드폰 예의 실종사건’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만큼 첨단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집단은 없을 듯하다. 빠른 성장과 빠른 적응력으로 삶은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있지만, 생각이나 예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일본 여성이 한국에서 좋은 점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마음 놓고 핸드폰을 받을 수 있는 점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예절이나 에티켓은 공동체 행복을 위한 출발점인 것이다. 서울시와 도시철도에서 홍보하는 지하철 10대 에티켓 중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통화는 작은 소리로’라는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여전히 ‘핸드폰 예의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아. 여보세요.” “쓩~ 팡팡팡”, “찰칵 찰칵”, “나 이런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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