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도자의 덕목
우리 집 서가에는 「공직의 윤리」라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두 분의 학자가 그 내용을 이루는 ‘정치의 윤리’와 ‘행정의 윤리’를 나누어 집필해서 거의 반세기 전에 출간한 책인데, 두고두고 펼쳐보면 좋겠다싶어 내가 학창시절부터 공직을 떠난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 왔었습니다. 요즈음 매스컴이 시시각각으로 차기 대통령 후보에 관한 뉴스 보도와 평론에 열을 더해가는 시점이라, 다시 한 번 이 책을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정치의 윤리 편에는 올바른 정치가의 ‘자질’(資質)과 ‘금기’(禁忌)가 수십 쪽에 걸쳐 기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 요지를 옮겨봅니다. 먼저, 국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에토스(ethos)는 일관성을 유지하게끔 예리한 통찰력이 뒷받침된 ‘신념’(信念)이고, 다음으로 정치가는 말과 행동에 대하여 ‘책임’(責任)을 지며, 국민의 의사를 구체화하는데 ‘성실’(誠實)을 다하고, 온갖 비평과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불굴의 ‘인내’(忍耐)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 책임, 성실과 인내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에서 나오는 정치가의 네 가지 금기는 ‘권력욕’(權力慾), ‘이욕’(利慾), ‘명예욕’(名譽慾), ‘정실’(情實)입니다. 정치는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상처를 주는 권력욕, 부패의 온상이 되는 이욕, 허영심에 빠져 지도자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리는 명예욕, 부정이나 부패의 근원이 되는 정실 등의 금기는 사회적 정의와 공평을 무너뜨리는 악(惡)임을 지도자가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매스컴이 이러한 정치지도자의 자질과 금기의 잣대로 차기 대통령 후보자들을 검증해보면 어떨까요?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을 수도 있기에 만점은 못 되더라도 A학점 정도 줄 수 있는 좋은 지도자를 고를 수가 있을는지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선거일이 되면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나가셔야 합니다. 최선의 지도자가 될 후보자가 없다면 차선의 선택이라도 꼭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시민들이 대통령선거와 같은 정치적 결정에 자유선거를 통해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높게 평가하고 있고, 선거에 참여하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목자
교회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고, 대림시기에 기다림의 예절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렇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태 3장, 마르 1장, 루가 3장, 요한 1장)를 들으며,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로 미움과 교만, 다툼과 분열, 거짓과 의혹으로 혼탁한 이 세상에 자비와 사랑의 큰 빛으로 오시는 분은 ‘착한 목자’(요한 10장)이십니다. 이 목자는 양떼보다 앞장서 가시면서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분은 양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양들도 이분의 목소리를 알아들어, 한 목자 아래서 한 양떼가 됩니다. 이분은 우리들에게 참 음식과 참 음료로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착한 목자는 길 잃은 양 한 마리도 찾아 나서시고, 병든 양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분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습니다.”(마르 10,45 마태 20,28 루카 22,27)
대선 후보자로 등단하신 분 중에 어디 이런 착한 목자 같은 분은 안 계시는지요? 진정한 자유와 질서를 누리는 가운데 사랑과 정의가 꽃피는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의 소리를 알아듣고, 겸손한 자세로 목숨 바쳐 일하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우리를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아 주어 백성들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 참 목자를 닮은 지도자 말입니다.
신앙의 해를 맞아 ‘새 복음화’의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바쁘고 고달프다 해도 이맘때에는 구유에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의 ‘강생의 신비’를 깊이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림초가 밝게 타오르는 동안, 고난의 인생길에서 나도 모르게 쌓인 미움과 불신, 이기와 교만의 언덕을 사랑의 불꽃으로 허물어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깨끗한 이들의 벗인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과 사랑으로 다시 오십니다. 이 땅에 기쁨과 평화의 임금님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뵙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고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마음을 여는 것’(開心)이 곧 행복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적인 삶’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으로 변화할 때입니다. 이제 주님과 친교를 이루어 각자가 ‘사랑의 도구’요 ‘진리의 증거자’가 될 수 있도록 간절히 청해 봅시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김창선(세례자 요한)씨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했고, 현재 서울 우이동본당에서 말씀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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