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 샤를르 페기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오랫동안 성사 생활을 하지 않은 냉담교우였다. 그런 그가 1912년 6월 14일 홀로 순례를 떠나게 됐다. 그의 아들 피에르가 중병에 걸렸지만 아버지인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낫길 간절히 바라며 떠난 순례는 150km 떨어진 샤르트르 성당에서 끝나게 된다. 그는 친구 조제프 로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성당을 보자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네. 나의 모든 더러움이 한 번에 사라져버렸지. 나는 다른 사람이 됐어. 나는 전에 전혀 해 본적이 없는 기도를 했어. 나는 내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다네. 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지.”
샤를르 페기의 영향으로 1935년부터 지금까지 파리와 파리 근교의 대학생들이 샤르트르 성지 순례를 시작했다고 한다. ‘2012 세계순례대회’ 세계순례포럼의 기조강연에서 소개된 이 이야기를 듣고 ‘왜 그는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세계순례대회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순례는 관광이 아니다’였다.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문규현 신부님도, 순례를 동행했던 이영춘 신부님도, 교황청 순례특사인 죠셉 칼라티파람빌 대주교도, 샤르트르순례길 위원장 브느와 드 신느티 신부님도 모두 ‘순례는 관광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순례를 다녀온 후 불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길이 험하고 풍경이 별로였다’ ‘생각할 시간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다 좋았지만 벅찬 감동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아픈 아들을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매달려 걷던 샤를르 페기가 걸었던 ‘순례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샤를르 페기는 순례의 끝에서 주님을 뵈었고 자신의 소원이 아닌 기도로 응답했다. 그리고 아들 피에르는 건강을 되찾았다. 복음서의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순례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먼저 우리의 마음가짐을 점검해보자. 그리고 ‘간절함’을 갖고 다시 주님을 향해 순례를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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