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
“야, 고만하고 한 잔하자! 뭘 그래 앉기만 하면 게임이냐?”
“아이고 행님 이게 중독성이 강합니다.”
후배는 소주 한 잔을 얼른 들이켜고 앞사람은 쳐다볼 틈도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긁어대면서 입만 달싹거립니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 2천만 명이 한다는 ‘애니팡’ 아닙니까, 요즘 이거 안 하면 왕따 당합니다. 행님도 빨리 스마트폰으로 바꾸이소.” 말 꺼낸 제가 멋쩍어서 혼자 잔을 비우고 옆을 죽 둘러봅니다.
늦은 밤, 여기저기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서너 명이 앉아 있으면 한 명쯤은 혼자 고개를 푹 숙이고 게임에 열심입니다. 요즘 새로 나타난 일명 ‘수구리 족’입니다. 어디서든 틈만 나면 고개를 푹 ‘수구리’고 스마트폰에 열중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올 한 해 전 세계적으로 개인용 컴퓨터가 3억 대 정도 팔렸는데, 스마트폰 류의 기계는 6억 대 정도가 팔렸다고 합니다. 컴퓨터보다도 더 쓰임새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상업적 가치도 스마트폰 류가 훨씬 높아져서 그것에 따른 프로그램 개발이 활발합니다. 그중에서도 요즘 유행하는 소셜 게임 ‘애니팡’이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전자오락실의 추억
혼자 씁쓸한 생각이 들어 안주를 뒤적이다 옛날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전자오락실에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가본 전자오락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제 고향 ‘진해’가 영 시골은 아니었지만, 36년 전 부둣가 ‘속천’은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촌놈들이 시내 오락실에 들어서자 그냥 그 자리에서 입만 떡 벌리고 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게임이라야 벽돌 깨기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벽돌이 깨질 때마다 내는 전자기계음은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벽돌을 열심히 깼습니다. 그 이후 오락실을 가기 위해 엄마에게 숱한 거짓말을 해야 했고, 빈병을 주우러 다니고 폐지와 고철을 모으는 알뜰한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쩝, 그 열성으로 공부를 할 걸 그랬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오락실을 끊었지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자오락은 발달해왔고, 엄마와 아이들이 싸우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자오락은 인터넷을 타고 온 세상을 이어주는 게임이 되었고, 프로 선수들이 밥벌이로 삼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의 게임이 어떤 길을 걸어왔든, 게임은 대부분 한정된 공간에서 혼자 하든지 몇몇이 편을 짜서 서로 맞붙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게임 방식은 게임하는 사람들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인기 있는 소셜 게임은 공간의 제약이 없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공간의 제약이 없다 보니, 혼자 있을 때뿐 아니라 술자리, 밥자리, 공부자리, 업무자리 어디든 가리지를 않습니다. 잠시 틈만 생기면 스마트폰 화면을 긁어 대기 바쁩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듣거나 눈을 마주칠 일이 없어집니다.
사람의 관계성과 스마트폰
사람은 관계성의 존재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를 맺지 않고 살기 힘듭니다. 관계에서 밀려나면 외롭고, 두렵고, 스스로 하찮게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회는 ‘왕따’라고 부릅니다.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누구나 다 가졌다는 스마트폰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그것은 더 두렵습니다. 스마트폰 안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러주고, 말을 걸어주고, 하트를 보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더 두렵습니다. 차라리 스마트폰이 없어서 친구가 없다고 여길 때가 더 좋습니다. 어쨌든 핑계거리가 있으니까요.
그 어떤 것이든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게 마련입니다. 소셜 게임의 순기능은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 듣게 돼”(하상욱, 단편 시, ‘애니팡’)라는 짧은 시처럼 소홀했던 사람을 다시 연결해주는 것이라든지, 잠시 이것저것 하릴없을 때 시간을 때울 수 있다든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만남이라든지, 잠시 짬날 때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어진다든지. 혼자 조용한 침묵과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묵상의 시간이 사라진다든지.
백남해 신부는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과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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